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재직 중이던 고정욱 대표는 어느 날 밤, 반려견이 피를 흘리며 아파하는 것을 발견하고 급히 24시간 동물병원을 찾았다. 병명은 요로결석. 고통스러웠을 반려견의 상태를 미리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떠오른 아이디어가 스마트폰을 이용한 반려동물용 소변 검사 키트였다. 국내 최대의 펫테크(Pet-Tech) 기업 ‘핏펫’의 시작은 이 작은 아이디어였다. 핏펫은 올해 서울시가 선정한 서울형 강소기업에 선정됐으며, 설립하던 해 5억 원이었던 매출은 올해 300억을 바라보고 있다.
출산을 위해 증권사를 그만두고 아이 돌보기에 전념하던 이은희 대표는 이유식을 먹지 않으려는 아이와 씨름을 하다가 ‘음식을 데워주는 식판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유식이 식어가고 있는데도 아이들은 금방 먹지 않고 딴청을 부린다. 식사 중에도 몇 번이나 다시 음식을 데워야만 했다. 많은 엄마가 겪는 현실적인 고충을 아이디어 하나로 해결한 베이비키스의 보온식판은 이렇게 개발되어 2018 서울국제발명전시대회, 2019 여성발명왕EXPO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현대 사회에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성공을 이루는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물론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서 모두 창업을 시작하거나 사업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면 국내 기업과 기관은 제품 및 서비스, 정책의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에 늘 목마르다. 공모전 전문 홈페이지 씽굿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개최된 공모전은 총 7,338건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획 아이디어’ 부문 공모전은 1,431건으로 ‘대외활동 모집(1,903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개최됐다. 가장 많은 공모전을 주최한 곳은 ‘정부 기관(1,596건)’이었으며 ‘지방자치단체(1,226건)’ 및 ‘중소벤처기업(923건)’ 등도 공모전을 통한 아이디어 모집에 적극적이다.
그동안 공공과 민간에서는 아이디어의 활용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정부는 아이디어의 사업화를 위한 멘토링 운영 등 여러 가지 지원책을 마련하여 시행해왔고, 민간 또한 소비자 요구에 부합하는 제품 출시를 위해 개별적으로 아이디어를 공모하거나 관련 플랫폼을 운영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조립 블록으로 유명한 ‘레고(LEGO)’는 누구나 자신의 레고 창작물을 제안할 수 있도록 ‘레고 아이디어스(LEGO IDEAS)’라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으며, 많은 팬들의 지지를 얻은 아이디어는 실제 제품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허청은 아이디어가 사장되는 것을 방지하고 필요한 기업 등에 연계되어 활용될 수 있도록 누구나, 언제든 아이디어를 손쉽고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는 ‘아이디어 플랫폼’을 오는 2월 개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이디어 플랫폼을 통해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국민과 이를 활용하려는 수요자인 기업, 기관을 상시적으로 연결할 계획이다.
아이디어를 가진 국민이라면 누구나 제안자로 참여할 수 있다. 본인이 직접 사업화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를 제안해 이를 반영한 기업의 혁신적인 제품 및 서비스 개발에 힘을 보탤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허청은 제안자의 아이디어가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아이디어 플랫폼만의 중개인, ‘거래 전문가’를 지원한다. 거래 전문가들은 아이디어 거래를 중개하고 협상 과정에 자문을 제공하며 제안자가 손쉽고 안전하게 아이디어를 판매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허청 관계자는 “과거에는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그 아이디어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에 대해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진데 반해, 최근에는 급변하는 기술변화에 따라 아이디어 자체가 기업의 자산이 되어가고 있다”며 “아이디어 플랫폼을 통해 지식재산 거래를 활성화하고 무엇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장되지 않고 끊임없이 개발되는 선순환 네트워크를 구축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동호 기자 dong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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