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경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몰고 온 후폭풍과의 싸움으로 점철됐다. 폭등한 집값과 5,000조 원에 이르는 3대 경제주체(가계·기업·정부)의 부채는 암 덩어리처럼 우리를 파고들고 있다. 경제학계 원로인 김인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미국이 생각보다 일찍 긴축 프로그램을 가동할 경우에 대비해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이 손을 맞잡고 경제 전반의 연착륙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특히 “지금은 부동산 시장의 과열은 물론 경착륙할 때 발생할 심각한 문제를 막기 위해 정책의 사활을 걸어야 할 때”라고 강하게 주문했다. 30일 김 교수와 만나 2020년 정책 운영 평가와 내년 경제의 경로 등에 대해 들어봤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정부의 대응을 평가한다면. 정부는 성장률 측면에서 해외에 비해 선방했다고 자평한다.
△1년의 성장률을 갖고 경제 성과를 말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성장률은 2~3년을 같이 봐야 한다. 올해가 높다고 다른 나라보다 성공했다고 하는 데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성장률 못지않게 부의 분배와 부동산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급격하게 변화가 생기면 추후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부동산 정책은 실패했다. 문제가 생기면 전문가와 일류의 말을 듣고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런 점이 미흡했다. 백신 문제도 전문가들이 많이 말하지 않았는가. 백신을 미리 확보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뼈 아플 수 있다.
-부동산 문제를 꺼냈는데 지금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숙제는 무엇인가.
△역시 부동산이다. 서울의 아파트 실거래가가 한국부동산원 데이터로 2017년 11월을 100이라고 하면 2020년 7월에 146이 됐다. 문제가 크다. 집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 부의 분배 문제뿐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다음은 부채 문제인데 민간 신용(가계 부채, 기업 대출)과 정부 부채 두 가지다. 특히 정부 부채는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6.1%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엄청난 수치다. 여야 정치권이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유연성을 위해 합의해야 한다. 공기업 부채까지 포함한 국가채무비율(D3)을 60%(2019년 말 59%)로 억제하고 재정 적자가 3%를 넘지 않게 제약을 둬야 한다. D3가 70~80%까지 되면 그때부터는 관리하기 어렵다. 재정 지출이 늘면 그만큼 공기업 부채를 줄여야 한다.
-정부가 올해 재정준칙을 내놓기는 했다.
△법으로 명문화해야 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여야가) 바뀌면 서로 필요할 것이다. 정권을 잡고 이전 정권보다 더 많이 풀겠다고 하면 문제가 커지고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 있다. 어느 단계에서는 내핍 정책을 써야 하는데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금융통화위원회 같은 ‘재정준칙위원회’를 만드는 것이다. 위원회를 두면 정권 차원에서도 부담이 적다. 일반적인 정부 위원회처럼 운영되면 안 되고 권한을 주고 구속력과 책임 의식을 지닌 금통위 수준이 돼야 한다. 금통위처럼 자율성을 주면 재정의 유연성도 확보할 수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23년부터 나랏빚을 갚겠다고 선언했듯이) 국가 지도자는 당장 어려워도 장기적으로는 제대로 하겠다며 재정의 지속성을 천명해야 한다.
-과도한 재정 의존으로 민간이 위축된 모습이다. 특히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이 다른 나라보다 더디지 않나.
△산업구조와 노동시장 개혁이 중요하다. 국가 경쟁력은 금융이나 재정 정책보다 여기서 나온다. 10년 전과 지금의 시가총액 10위 기업만 봐도 산업의 변화가 금방 나타난다. 2010년에는 10위 기업이 전자·자동차·제철·에너지·금융 분야였다. 2020년에는 반도체·바이오·전기차·정보기술 분야 등이다. 우리 국민 개개인의 능력은 상당하다. 이를 뒷받침할 (법과 제도 등) 체제가 갖춰져야 한다. 민간에서 원하는 것을 정부가 제대로 들어야 한다. 일류는 민간에 있다. 성과를 단기간에 보여주려다 공공의 비중이 너무 커졌다. 2019년에 2% 성장했는데 정부가 1.5%, 민간은 0.5%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민간이 주도하는 경제가 건전한 경제다.
-노동 개혁은 현 정부에서 되레 퇴보한 것 아닌가.
△문재인 정부가 노동 개혁을 하기에 가장 유리할 것으로 봤다. 노동 개혁을 했다면 높게 평가받았을 텐데 정치적 고려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노력해야 한다. 경제구조가 바뀌고 있는데 노동 분야만 개혁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노조를 이끄는 분야가 주로 공공·금융·대기업인데 공공·금융 부문의 변화가 제일 심하다. 대기업의 산업구조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노조 스스로 활로를 뚫어야 한다. 큰 흐름에 맞춰야 한다.
-공공의 개입이 커지며 정책 의도에 반하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선의의 역설’ 현상이 나타났다.
△경제학에서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거워야 한다고 한다. 가슴도, 머리도 뜨거우면 곤란한데 그런 정책이 자주 나오는 것 같다.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인 최저임금만 해도 3년에 걸쳐 비슷한 수준으로 올렸으면 지금과 같은 부작용이 없었을 것이다. 정책을 제시하고 집행할 때 부작용을 생각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시장에 맡기고 시장의 실패가 있는 곳에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부동산 정책도 같은 흐름 아닌가.
△그렇다. 선의로 임차인을 보호한다는 것, 부동산 수익을 몰수한다는 것이 정반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부동산 정책은 기본적으로 수요 공급의 문제로 봐야 한다. 인구는 늘어나지 않고 있지만 서울에 주택이 모자란 것은 사실이다. 정부는 주택 보급에 지장이 없다고 하지만 수요자가 원하는 주택이어야 한다. 지금 세대는 1970년대에 지어진 집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부동산을 투기 문제로 보고 투기 수익을 환수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공급에 초점을 둬야 한다. 정부의 공급에 신뢰가 생기면 가격이 안정된다. 집값이 3년 동안 46% 오른 것은 통화량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재건축·재개발도 민간이 주도하고 공공은 보완 역할에 그쳐야 한다.
-내년 경제를 짚어봤으면 한다. 정부는 내년에 3.2% 성장을 예상하지만 복병이 많을 것 같다.
△매년 성장률에 집착하지 말고 긴 호흡에서 정책을 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내년에도 코로나19 극복이 관건인데, 특히 백신 확보가 핵심이다. 그리고 부동산과 가계 부채, 재정 문제에 대한 대처가 중요한데 이 가운데 2~3년에 걸쳐 걱정하는 것이 부동산 문제다. 지금의 과열 상태를 놓아둘 수도 없지만 거품이 급격하게 꺼져도 문제다. 경착륙되면 문제가 커진다. 정부는 여기에 정책의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내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연착륙이라 할 수 있다. 경제 전반에 걸쳐 연착륙이 돼야 한다. 지금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문제가 훨씬 더 커진다. 내년은 경제적으로 정말 중요한 시기다. 정부는 눈에 보이는 성과만 찾으려 하면 안 된다. 여야 정치권은 경제 연착륙을 위해 협의하고 합의해야 한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정권을 잡든 연착륙은 달성해야 할 숙제다.
-기업 부채도 걱정이다. 긴축이 이뤄지면 부실이 현실화할 텐데.
△이 문제도 연착륙의 중요한 이슈이다. 잘못되면 금융 부실이 된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역할을 잘해야 한다. 1차적으로 재정이 책임지되 한은은 금융 중개 대출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 한은의 정책 목표에 고용 안정을 명시해야 한다. 그러면 한은도 책임 의식을 갖고 정책을 더 생각할 것이다. 그 중 고려할 게 금융 중개 대출이다.
-자산 시장과 실물의 괴리가 커지면서 유동성 함정도 걱정된다.
△자산 시장은 과도하게 팽창하고 실물은 침체인데 이것도 연착륙시켜야 한다. 대기업은 돈이 많다. 결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살아나게 해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 물론 이들이 전부 살기는 쉽지 않고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정부가 옥석을 가리는 것은 힘들고 금융회사에 맡겨야 한다. 은행의 신용 평가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세계 경제 역시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새 정부가 출범하는데.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좀 세련된 형태로 진행될 것으로 본다. 기술 전쟁과 통화 전쟁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기술 전쟁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때보다 고도화할 것으로 보인다. 통화 부분의 경우 조 바이든 차기 대통령은 전문가한테 맡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화 전쟁은 더 거세질 것 같다. 통화 전쟁은 더 큰 전쟁이다. 패권 확보와 직결된다. 미국이 금융시장 개방을 중국에 요구할 경우 중국도 부분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환율 정책도 중요하지만 미국 경제가 좋아진다면 금리나 양적 완화 정책을 바꿀 텐데 그것이 걱정이다. 미국과 동떨어져 금리 정책을 펼 수 없으니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미국이 생각보다 빨리 긴축 프로그램을 가동할 때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지 미리 생각해야 한다. 긴축 대응은 어렵고 제대로 하기도 힘들다. 생색나는 정책도 아니다. 하지만 잘못하면 다음 정권의 부담이 매우 커진다. 다시 강조하지만 여야 어느 쪽이든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보고 경제의 연착륙을 위한 노력과 합의가 필요하다.
/김영기 논설위원 yo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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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경기고를 졸업했다. 서울대 상대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다트머스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과 한국금융학회 회장, 금융발전심의회의 은행분과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학장, 한국경제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은 총재 물망에 오르는 등 국내 경제학계의 대표적인 원로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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