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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장관의 자격

이지성 사회부 차장





장관은 명예로운 자리다. 장관 직위에 오르는 것 자체가 가문의 영광이자 선망의 대상이다. 같은 장관급인 국회의원에게는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이 부여되고 군대 대장에게는 국립묘지 안장의 자격이 주어진다. 행정부 장관에겐 그런 혜택이 없지만 정부 부처의 수장이라는 것만으로도 위상이 남다르다. 막강한 인사권과 예산권이 있기에 모든 공무원이 꿈꾸는 직책이다.

장관을 지냈다면 차례상에 올리는 지방도 ‘현고학생부군신위’ 대신 ‘현고장관부군신위’로 바뀐다. 과거에는 동네에서 장관이 나오면 마을 잔치를 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요즘 농담조로 쓰이는 벼슬도 관아에 진출해 나랏일을 보는 높은 자리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조선 시대에도 장관 격인 판서 아래 차관인 참판, 차관보인 참의가 있었다. 참의는 간부회의에 참여했지만 찬성과 반대를 얘기하지 못했다. 참판은 의견까지 낼 수 있었지만 책임을 지지 않았다. 판서는 모든 정책을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까지 졌다.

영어로 장관을 뜻하는 ‘미니스터’(minister)의 어원은 수학에 나오는 ‘마이너스’(minus)다. 부족하고 모자라기에 주인을 섬겨야 하는 존재라는 의미다. 그 주인은 당연히 임면권자인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그렇기에 미관말직이 아닌 고관대작에게 더욱 중요한 덕목은 책임과 희생이다.



1년 동안 윤석열 검찰총장 밀어내기에 사활을 걸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사표가 30일 수리됐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는 구절이 절로 떠오른다. 취임 일성으로 부르짖었던 ‘검찰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국민을 극심한 분열과 반목으로 이끌고 우리 사회를 지치게 한 열정과 집념은 높이 살 만하다. 추 장관은 윤 총장과의 싸움에서 판정패하는 데 그쳤지만 국민에게는 지독한 생채기만 안겼다.

추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표 수리 전날인 29일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동부구치소를 뒤늦게 비공개 방문했다. 그날 밤 추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총장의 업무 복귀를 결정한 법원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어느 변호사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 무력화에 미쳐 있는 동안 동부구치소는 코로나19 지옥이 됐는데 장관은 법치주의와 사법제도를 부정하는 폭거를 자행했다”고 일갈했다.

새해에도 여러 장관이 물러나고 신임 장관이 장관실에 들어올 것이다. 추 장관 역시 전직 장관이라는 감투를 쓴 채 원래 있던 정치판으로 돌아갈 것이다. 설령 정치인 장관이 새로 부임한들 무조건 배척하거나 반대할 이유는 없다. 대통령이 자기 사람을 장관에 앉히는 것도 법률이 보장한 인사권이기에 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정권의 충견이 아닌 국민의 공복을 한 번쯤은 만나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 자꾸만 생기는 세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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