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시신은 해부학 실습용으로 써주십시오.”
다른 사람을 위해 의술을 펼쳤던 의사가 뇌사에 빠지자 생명 나눔으로 6명에게 새 삶을 선사하고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은 지난 25일 김시균(60·사진) 씨가 삼성서울병원에 간과 신장, 각막과 조직 기증을 하고 삶을 마무리했다고 31일 밝혔다.
경북대 의대를 나와 강원도 동해 동인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의사로 봉사하던 고인은 20일 가족과 함께 주말을 보낸 후 다음 날 출근하다 병원 인근 사택 엘리베이터 앞에서 갑자기 쓰러진 후 뇌출혈로 인한 뇌사 판정을 받았다. 이후 치료를 위해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고 결국 가족들은 그의 장기 기증에 동의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고인은 평소 “만약 죽게 된다면 의대 해부학 실습용으로 시신을 기증하겠다”고 말해왔다. 가족들은 고인의 이러한 유지를 받들어 기증을 결정했고 그가 남긴 장기들은 6명에게 새 삶을 선사했다.
여행과 등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고 세 딸과 미용실을 함께 갈 정도로 자상함을 보였던 고인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도 발 벗고 나서 지난 15년간 월드비전을 통해 5명의 아이에게 꾸준히 기부하기도 했다.
아내 나혜준 씨는 “가족들에게 많은 사랑을 줘서 감사하다. 당신의 아내였던 것이 영광이었고 사랑한다”며 “평생을 아픈 사람을 위해 힘써왔는데 마지막 길도 아픈 이를 위해 가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둘째 딸 김현진 씨도 “다시는 아빠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힘들고 슬펐지만 아빠가 다른 생명을 살려서 자랑스럽고 큰 위안이 된다”고 전했다.
기증을 담당했던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중부지부 박수정 코디네이터는 “아픈 환자를 치료하던 의료진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아픈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주셔서 기증자와 가족에게 감사드린다”며 감사를 표했다.
고인은 27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장례를 마치고 경기 시안가족추모공원에 잠들었다.
/송영규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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