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바보 같다’고 핀잔도 주지만 저는 바보가 좋아요. 직접 만든 반찬으로 독거노인이나 한 부모, 조손 가정 아이들이 끼니를 거르지 않는 것만 봐도 행복하고 일이 힘든 줄 모릅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매일 반찬을 만들어주는 이상기(60) 나눔자리문화공동체 대표는 봉사가 체질이라고 말한다. 이 대표는 경기 시흥시 신천동 주변 취약 계층에 매일 반찬을 전달하는 봉사를 23년째 이어오고 있다. 3일 시흥시체육관 지하 식당 조리실에서 만난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봉사 일이 배로 늘었지만 어르신이나 장애인들이 그만큼 도움을 받으니 기쁘다”고 말했다.
지역 봉사 단체 나눔자리문화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이 대표는 지난 1997년부터 시흥 신천·대야·목감동 일대 50~60가구에 꾸준히 반찬을 만들어 전달했다. 반찬 나눔을 비롯해 독거노인·청소년 돌봄 등 그가 이제껏 봉사한 시간만 어림잡아 6만 시간에 달한다. 헌신적 노력 덕에 ‘시흥의 봉사 대모’로 불리는 그는 2020년 말 행정안전부가 주최하는 ‘자원봉사대상’ 최고상인 국민훈장을 받았다.
그는 봉사 회원 20여 명과 함께 시흥시로부터 무상 임대받은 체육관 지하 식당으로 휴일도 없이 거의 매일 출근한다. 이날도 오전에 장애인에게 줄 반찬을 만들고 한숨 돌린 그는 “아침 6시부터 시작해 배달까지 마치면 하루 7~8시간 노동은 기본”이라며 “김장철에는 자정까지 배추를 다듬는 날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자원봉사자는 2019년보다 30% 이상 줄었지만 지역 경로당과 무료 급식소가 문을 닫아 업무 강도는 더 높아졌다. 그는 “코로나19 이전에는 매주 한 번 제공으로도 충분했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매일 만들어도 모자라 취약 계층 가구에 번갈아 주고 있는 형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나마 나눔에 동참하는 이웃이 있어 힘이 된다. 도농 복합 지역인 이곳에서 농부들이 기른 채소를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봉사 회원들이 사비를 들여 식재료를 채워놓기도 한다. 그는 “밭에 배추를 통째로 가져가라는 이웃도 있다”며 “시흥시1%복지재단 등 지역 단체들의 도움도 크다”고 말했다.
봉사는 그가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천주교 가정에서 자라 교회 봉사를 당연하게 여겼고 결혼 후 몸이 약했던 막내딸 건강을 위해 찾아갔던 충북 음성군 꽃동네에서 독거노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봉사 활동은 더욱 구체화됐다. 1990년대 시흥으로 이사를 온 후 관내 중고등학교에서 청소년 상담 봉사를 이어간 그는 불우한 환경의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쉼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나눔자리문화공동체도 세웠다.
그는 “방황하던 청소년들이 이제는 장성해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 된 것을 보면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10여 년 전 화상 상흔이 컸던 한 아이는 사업가로 성장해 최근 신생아복 1,200만 원어치를 쉼터에 기부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이 대표의 봉사 욕심에는 끝이 없다. 어르신들이 스스로 배식 활동을 하고 반찬 배달을 돕는 ‘공동부엌’ 나눔 사업을 더욱 확대하고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코로나19로 밖에 나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간식 제공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재난 상황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 피해를 본다”며 “봉사를 통해 얻는 배움과 기쁨이 크다는 점을 알고 나눔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새해 상황이 금방 좋아지지 않더라도 지금 봉사를 멈추지 않겠다는 그는 “코로나19가 빨리 사라져 경제·사회가 빨리 안정되고 마음 편하게 봉사할 수 있는 게 새해 소망”이라고 덧붙였다.
/박현욱기자 hw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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