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새해 벽두부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을 띄웠지만 당내 반발에 부딪히며 3일 사실상 입장 철회를 시사했다. 친문(친문재인) 강경파를 중심으로 “두 전직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한 적이 없다”는 반대 여론이 형성되자 이 대표도 “국민 공감대와 당사자들의 반성이 중요하다”며 한 발짝 물러선 것이다. 국민의힘 등 야당은 “사면을 두고 장난을 치면 안 된다”며 이 대표의 입장 변화를 강력히 비판했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비공개 최고위원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 공감대와 당사자들의 반성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앞으로 국민과 당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고위는 △이 대표의 전직 대통령 사면 건의는 국민 통합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건으로 이해한다 △촛불 정신을 받들어 개혁과 통합을 함께 추진한다는 데 공감한다는 의견도 입장문에 담았다.
이 대표는 자신의 사면 건의 제안에 대해 “국민 통합을 이뤄나가야 한다는 오랜 충정을 말씀드렸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치 또한 반목과 대결 진영 정치를 뛰어넘어서 국민 통합을 이루는 쪽으로 발전해가야 한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지난 1일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며 사면론을 띄웠지만 당내 반발에 꺾이는 모양새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곧바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사법 처리가 잘못됐다는 일각의 주장을 의도치 않게 인정하게 될 수도 있는 데다 자칫 국론 분열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특히 정청래·김남국·김용민 의원 등 ‘친문’ 강경파가 사면 반대 여론을 주도했다. 김용민 의원은 “친일과 독재 세력들이 잠시 힘을 잃었다고 쉽게 용서하면 힘을 길러 다시 민주주의를 파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취임 이후 꾸준히 협치를 내세우고 있으나 번번이 당내 강경파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그는 지난해 9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족의 말 ‘우분투’를 인용하며 “국민과 여야에 함께 이익되는 윈윈윈의 정치를 시작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개혁 입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친문 세력의 요구에 지난해 ‘임대차 3법(주택임대차보호법·부동산거래신고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 등을 야당을 배제한 채 본회의 처리했다.
지난달 14일에는 이 대표가 야당에 ‘국회 코로나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으나 국민의힘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민주당은 의회 70년 전통과 윤리를 망가뜨리며 야당을 투명인간 취급했다”며 “K방역을 온전히 정권의 전리품으로 품고 있다가 사태가 반전되니 야당에도 책임을 떠넘기고 싶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가 당내 반대에 떠밀려 ‘당사자 반성’을 강조하자 야당은 더 크게 반발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무죄를 주장하고 재판을 받는 사람에게 반성하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고 성토했다. 이어 사면론을 제기한 이 대표를 향해 “이것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당 대표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인엽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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