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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허락한 투잡, 이태리서 유학한 유니폼 디자이너 이재우입니다

작업복-일상복 애매해진 경계에서 피어난 새로운 산업 ‘워크웨어’

자율성 약속해 정규직 됐지만 프리랜서 병행하며 개인 브랜딩 적극 나서


이른바 전문직의 장점은 일자리의 유출입을 스스로가 콘트롤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가공인자격증이 부여한 전문직이 그러한데 그렇다고 꼭 자격증이 있어야만 고용안정성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실력이 갖춰졌다면 자격증 없이도 본인이 원하는 고용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재우 디자이너가 그런 케이스다. 그는 중견 섬유소재 회사에 정규직으로 등재된 엄연한 직장인이다. 그런데도 회사 밖에서 개인 브랜딩에 적극 나선다. 회사로부터의 ‘눈칫밥’ 같은 것은 사전에 없다. 도리어 외부활동을 보장해주지 않았다면 회사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를 라이프점프가 만났다.





-만나서 반갑다. 자기 소개부터 부탁 드린다.

“안녕! 워크웨어 디자이너 겸 디렉터인 이재우다. 만나서 반갑다.”

-워크웨어? 조금은 생소하다.

“일상복의 반대인 작업복, 유니폼 등을 떠올리면 된다.”

-항공사 승무원 유니폼이나 건설현장 작업복 같은 것이지? 패션 디자이너는 익숙한데 워크웨어 디자이너는 생소하다.

“아무래도 워크웨어는 B2B(기업 간 비즈니스) 시장이니깐 일반인들은 낯설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워크웨어 한우물을 팠던 건가?

“그런 건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패션 유학하고 귀국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화려한 런웨이에 내 작품을 올리는 꿈을 이어갈지, 아니면 패션기업에 입사할지, 아니면 나만이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을지. 그러다 워크웨어라는 미개척지를 알게 됐고 강한 흥미를 느껴서 뛰어들게 됐다. 처음 한 작업이 금호아시아나그룹 메인타워 유니폼이었는데 그때부터 워크웨어 시장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됐다.“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

“워크웨어는 기업 이미지의 최전선에 있는 상징물 같은 것이다. 이 시각적 도구에 기업이 추구하는 바가 담겨 있다. 물론 작업 시 편의성, 안전성은 기본이고.

최근에 현대중공업 워크웨어 작업을 했는데 창립주인 고 정주영 회장이 추구했던 기업가치를 담아달라는 미션을 받았다. 창업주의 정신을 다시 새겨서 조선업 부흥을 이끌겠다는 의지였는데 기존의 약간은 낡아 보였던 색감을 걷어내고 피코크 블루, 로열 블루처럼 새로운 색감을 불어넣는 형태로 작업을 진행했다.“

-워크웨어 시장 현황은 어떤가.

-아직까지는 가려져 있는 시장이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폐쇄적이기도 하고. 워크웨어하면 이 브랜드다, 라고 하는 것도 아직은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규모를 키우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짙다. 반면 워크웨어 시장 전망은 밝다. 작업복과 일상복의 경계가 애매해지면서 일상생활에서도 착용 가능한 워크웨어가 더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워크웨어는 기본적으로 획일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작가만의 개성을 담아내는 방법이 궁금하다.

“워크웨어의 궁극적 취지는 일할 때 안전하고 편안한 옷이다. 기능성 위주로 설계됐기 때문에 디자인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그런 경향성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차별화할 수 있는 키워드는 주로 색감이다. 색감을 통해서 그 기업만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워크웨어 중에서 디자인 측면에서 가장 호평을 받는 것이 대한항공 워크웨어다. 장 프랑코 페레라는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인데 컨셉과 색감이 굉장히 뛰어나다. 스카이 블루와 화이트가 적용됐는데 하늘과 구름을 표현했다. 여기에 옷의 실루엣과 각종 악세서리, 메이크업기법 등까지 한데 어우러지면서 완벽한 디자인 디렉팅이 된 사례다.“

박소현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한 에어로케이 워크웨어. 기능성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 언리얼스튜디오


-그에 앞서 지역민간항공사인 에어로케이 워크웨어 작업으로 화제를 받기도 했는데.

“박소현 디자이너와 함께 10개월 정도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우리가 주목한 것은 ‘거꾸로’였다. 항공사 이름인 ‘에어로케이(AERO-K)’를 거꾸로 쓰면 코리아(K-OREA)인데 기존 항공사 유니폼의 이미지를 전환해보자, 란 발상을 기획했다. 지금까지 항공사 유니폼은 아름다움을 우선시했다. 우리가 주목한 것은 아름다움을 넘어선 ‘안전’이었다. 그래서 움직임을 방해하는 불편한 옷보다는 기능적이고 활동적인 옷을 만들었다. 젠더리스(Genderless·성별의 구분을 없애는 것) 컨셉을 적용해서 스커트도 없앴다. 이러한 파격적 기획이 화제가 됐었다.”



-그런데 디자이너라서 그런지 패션감각이 상당히 유니크(?) 하신 것 같다.

“(하하) 뭐, 나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편이다. 올해 나이가 46세인데 비슷한 세대 중에서 이렇게 입을 수 있는 분이 많지는 않겠지. 내 패션이 좀 특이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리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 다만 디자이너로서 사람들에게 시각적 영향을 주고 싶은 욕심이 있다. ‘아, 저렇게도 입을 수 있구나’ 같은 영향이랄까. 옷을 너무 좋아해서 그렇겠구나, 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하기야 창의적인 일을 하시는 분들이 가장 경계하는 게 몰개성이니까 아무래도..

“체질적으로 지루한 것을 못 견딘다. 반복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계속 추구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니까. 디자이너의 숙명 같은 거다.”

-디자이너 눈에 지금 나의 복장은 어떤지 평가해달라. (하하)

“(머뭇거리며) 남을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음... 하시는 일(기자)에 맞게끔 입은 것 같다.”

-(하하) 좋은 의미로 생각하겠다. 아, 이 질문도. 이탈리아에서 유학했는데 진짜로 이탈리아 사람들은 옷을 잘 입는지.

“모든 이탈리아 사람들이 패셔너블한 건 아닌데 뭐랄까. 자기만의 개성을 잘 살린다고 할까. 흥미로운 것은 이탈리아에 10년 살면서 명품 입은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빈부차이가 심한 영향도 있겠지만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이 명확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에게 잘 맞는 옷을 입는 것이 ‘옷 잘 입는 사람’으로 평가 받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이 직장인이면서 개인사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계시다. 일종의 회사가 허락한 투잡인 셈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성향 자체가 지루한 것을 못 참는다. 반대로 새로움에 대한 갈구가 강한데 무엇이 됐든 지금 집중하는 업계에서 새롭고 다양한 일을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어느 한 곳에 소속돼 그 일만 해서는 안 되니까. 지금 적을 둔 회사에 들어갈 때부터 조건을 달았다. 개인적 영역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회사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다행히 회사 대표께서 나의 성향과 계획을 존중해줘서 자유로운 고용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연봉에다 인센티브 이런 것도 다 받는 건가.

"그렇지. 정규직이니까. (하하) 이 자리를 빌어서 외부활동을 양해해 준 회사에 감사 드린다."

-그러면 본인만의 스튜디오를 차린다던가, 독립할 생각은 전혀 없는 건가.

“그렇다. 회사 대표 같은 직함이 부담스럽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어떤 형태든 상관없다. 디자인 디렉터 일을 더 왕성하게 하고 싶은데 경영 관련 업무를 맡아야 하면 아무래도 자율성이나 창의성이 조금은 위축될 테니까. 개인으로서, 또 디렉터로서 다양한 기업과 파트너십 형태로 작업하는 일에 집중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계획이나 포부 있으시면 말씀해달라.

“워크웨어 디렉터로서 일은 개인적으로는 이상을 포기하고 현실을 택한 결단이었다. 배고픈 예술가보다는 현실을 생각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거지. ‘유학파가 왜 유니폼을 만드나’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썩 유쾌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워크웨어 시장은 분명히 아직 개척되지 않은 곳이다. 미개척지에서 나만의 스타일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자부심도 있다. 이 폐쇄된 시장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그때가 되면 많은 기업들이 디렉터 이재우를 찾아주겠지? (하하)“

/박해욱 기자 spooky@lifejum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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