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남성 A씨는 2018년 암 보험에 가입했으나 최근 암 진단을 받고도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
2011년 다른 암 진단을 받았던 사실을 보험사에 알리지 않았는데, 보험사가 이를 '고지 의무 위반'으로 보고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A씨는 보험 가입 당시 보험사에 제출하는 서면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했다며 억울해했다. '최근 5년간 암에 걸린 적이 있냐'고 묻기에 7년 전 진단 받은 암은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험사는 5년간 진단뿐 아니라 치료를 진행한 적이 있어도 고지를 해야 했다는 입장인데, A씨는 고의로 고지를 피한 게 아니라며 관련 협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A씨처럼 보험사가 고지 의무 위반을 문제 삼아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보험을 해지하는 사례에 대한 민원은 꾸준히 늘고 있다.
4일 관련 협회에 따르면 생명보험은 2017년 5,719건이었던 고지 의무 위반 관련 민원이 2019년 6,681건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손해보험은 8,888건에서 1만4,750건으로 증가했다. 이런 분쟁이 늘어나는 것은 보험 상품이 점점 복잡해져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데도 현행법은 여전히 보험계약자에게 중요한 사항을 스스로 판단해 알리도록 '적극적 고지의무'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소비자정책위원회(공동위원장 정세균 국무총리, 여정성 서울대 교수)는 최근 보험계약자 고지 의무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으로 상법을 개정하도록 권고했다. 보험계약자의 '자발적 고지의무'를 '응답적 고지의무'로 바꾸는 방식이다. 보험계약자가 보험사의 서면 질문에 모두 답변했을 경우에는 별도의 '자진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고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다만 서면 질문에 답변하면서 고의로 중요 사항을 알리지 않는 경우에는 고지의무 위반으로 인정한다. 위원회는 "보험상품이 복잡·다양하고 보험사가 보험 관련 전문성이 높은데도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고지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정운천 의원이 보험계약자의 고지의무를 줄이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임기 내 처리되지 못하고 폐기된 바 있다. 법무부는 정책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상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지웅배 인턴기자 sedation123@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