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목소리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아침이슬’ 등의 포크송이고 8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엔 ‘광야에서’ 같은 민중 가요가 함께 했다.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은 가출 청소년들을 보듬었고, 지난해 발표된 방탄소년단(BTS)의 ‘라이프 고즈 온’은 코로나19가 온 세상을 뒤덮은 시대의 대중을 위로하고 있다. 한 시대의 유행가는 이렇게 그 시대의 모습을 담는다.
논객이기도 한 김형수 시인의 신작 에세이 ‘유행가들’은 이렇게 대중의 삶에 녹아 있는 노래에 담긴 시대 정신과 감수성, 생활·사회상을 짚은 책이다. 그는 살면서 라디오·전축·녹음기를 가져 본 적도 없지만 여러 경로로 음악을 접하면서 “이름 없는 가객들에게 받았던 감동의 기억들은 영혼의 세포에 스며들어 함께 숨쉬고 있다”고 말한다.
책은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트로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자는 트로트가 연주 장르가 아닌 ‘정서적 양상’이라고 이야기하며 분단·전쟁·빈곤과 경제개발을 겪은 우리 민족의 온기를 담고 있는 마지막 원두막이라고 칭한다. 저자는 이후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의 유행가 흐름을 전한다. 그는 1970년대 포크송 중심의 청년문화에서 청자를 창조의 주체로 보지 않던 이전 세대의 풍속을 전복하는 ‘대중의 아마추어화’를 읽어내고,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관제 향토가요가 시민군의 애창곡이 됐던 에피소드도 전한다. 고(故) 김광석과의 개인적 인연, 1990년대 문화를 좋아하지 않았던 과거도 고백한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건 유행가가 우리네 삶을 위로했다는 점이다. “유행가에 얽힌 추억담을 늘어놓다 보면 다들 시간의 마술에 속고” 만다는 김 시인의 고백에 어지간한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1만3,800원.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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