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변호사시험 수험생 준수사항을 갑자기 바꾸면서 형평성 논란에 빠졌다. 법무부는 애초 수험생들에게 “시험에 쓰는 참고용 법전에 밑줄을 그으면 부정행위”라고 안내했다. 하지만 일부 고사장에서 착오로 밑줄 긋기가 허용되자 준수사항을 바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진자 시험 응시 여부를 두고 곤욕을 겪었던 법무부가 이른바 ‘즉흥적 행정’으로 또 다시 수험생들의 비판에 직면한 모양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20일 10회 변호사시험 사전공지를 내고 ‘논술형 시험에 제공되는 법전은 시험 시간이 종료되면 제출돼야 한다’고 안내했다. 준수 사항에는 ‘시험 기간인 4일간 사용되므로 다른 사용자를 위해 낙서나 줄 긋기 등을 해선 안 된다. 이를 위반하면 부정행위자로 간주 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문제는 시험 첫날 일부 대학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에게 법전 밑줄 긋기가 허용됐다는 것이다.
원래 법전은 수험생에게 나눠줬다가 시험이 종료되면 회수하고 다시 시험이 시작되면 무작위로 나눠줬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법무부는 방역 차원에서 여러 사람이 한 법전을 쓰지 않도록 수험생 한 명당 하루에 법전 한 개를 배당했다. 코로나 19로 개인 전용 법전을 지급한 것이다.
시험 처음부터 끝까지 전용 법전에 밑줄을 치는 게 일부 고사장에서만 허용된 셈이 되면서 수험생들 사이에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본인이 친 밑줄을 통해 원하는 법조문을 쉽게 찾아 유리하게 시험을 칠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수험생 커뮤니티 익명 게시판에선 “우리는 매시간 무섭게 검사까지 해서 법전에 점 하나도 찍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불편해도 참았는데 뭐 하자는 건가”, “학교 내신 시험도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에 법무부가 재공지를 했으나 오히려 혼란을 더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는 이날 다시 ‘법전 사용 관련 응시자 불편 민원에 대한 안내’로 “법전에 밑줄은 가능하다”며 “시험시간 중 법전 접기도 허용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밑줄 긋기는 부정행위라고 규정했던 법무부가 이제는 밑줄 긋기를 허용한 것이다. 다만 “법전에 메모, 포스트잇 등 띠지, 숫자 넘버링은 금지되며 이를 위반하면 적발 시 부정행위”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조치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수험생들의 지적은 이어지고 있다. 한 수험생은 “지난 9년의 변호사시험 동안 한 번도 줄 긋기가 허용된 적 없는데 갑자기 문자메시지 알림으로 이번엔 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험생은 “처음부터 밑줄 치게 해준 고사장 수험생들은 전부 (부정행위를 했지만) 구제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서울경제는 이에 대해 법무부 측에 설명을 요청했으나 법무부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한편 법무부가 이번 변호사시험 수험생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법무부는 앞서 코로나 19 확진자나 감염 위험이 높은 수험생은 변호사시험을 못 보게 한 바 있다. 이에 일부 수험생들은 “직업선택 자유와 생명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과 가처분 신청을 냈고, 헌재는 이를 인용했다.
/손구민·오지현기자 kmso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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