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親)트럼프 시위대의 의회 난입 사건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론이 비등하는 가운데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선제적 ‘셀프 사면’ 가능성을 참모들에게 시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논의는 이번 사태 이전에 이뤄졌지만 의회 소요 사태에 이어 정치적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패배를 공식 인정하면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신임 대통령 취임식 이전에 정권 이양 작업이 순조로울지 불안해하는 시선은 여전하다.
7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두 명의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대선 이후 여러 차례 참모들과의 대화에서 스스로에 대한 사면을 고려 중이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만약 셀프 사면을 한다면 법적·정치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에 관한 의견도 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선임고문을 비롯해 측근에 대한 사면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화들은 최근 불거진 트럼프 대통령의 조지아주 ‘전화 압력’ 의혹과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사태 이전에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지아주 국무장관에게 전화해 대선 결과를 뒤집으라고 요구했다는 의혹과 지지자들의 폭동을 부추겼다는 비판으로 형사 기소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셀프 사면 권한에 다소 회의적이다. 미 법무부는 지난 1974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사임 나흘 전 ‘아무도 자신의 사건에서 판사가 될 수 없다는 기본 원칙에 따라 대통령도 자신을 사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작성한 바 있다. 다만 셀프 사면을 하더라도 이는 연방법상 범죄에만 해당하기 때문에 뉴욕 맨해튼 지검의 트럼프그룹 탈세 수사 같은 지방 검찰의 수사는 피할 수 없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뒷일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신세다. 이날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수정헌법 25조를 발동해 트럼프 대통령을 끌어내려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의회가 탄핵을 추진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공화당 상원이 이에 반대하고 조 바이든 당선인도 탄핵에 부정적이어서 추진될 가능성은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향후 수사 가능성과 맞물려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날 워싱턴DC의 연방검찰은 의회 소요 사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을 기소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인지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을 인정하면서 질서 있는 정권 이양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의회가 (대선) 결과를 인증했고 새 행정부는 오는 1월 20일 출범할 것”이라며 “이제 내 초점은 순조롭고 질서 있고 빈틈없는 정권 이양을 보장하는 쪽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이어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시도는 투표의 진실성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일 뿐이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트럼프에 대한 조기 퇴진 논의가 확산하고 퇴임 후 사법 처리 가능성도 거론되는 만큼 새 행정부 출범 전까지는 예측 불허의 상황 발생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펜스 부통령이 바이든 당선인의 취임식에 참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평화적 정권 이양을 지지한다는 점을 대외에 보이기 위해 취임식에 참석할 것 같다”며 “대선 결과를 승인하지 말라는 요구를 거부한 부통령을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 비난한 뒤 참석 결정이 더 쉬워졌다”고 해석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질서 있는 정권 이양 의사를 밝혀 펜스 부통령의 행보는 더 자유로워졌다.
다만 펜스 부통령실은 취임식 초대장을 공식적으로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데빈 오말리 부통령실 대변인은 7일 트위터에 “초대받지 않은 곳에 갈 수는 없다”며 참석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미 의회 합동취임식준비위원회(JCCIC) 측은 현직 대통령과 부통령은 취임식에 공식적으로 초대받은 사례가 없다며 관례에 따라 당연히 참석하게 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에게서 참석 여부를 통보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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