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차례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에도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양부모의 학대 속에 짧은 생을 마감한 만 16개월 정인이(입양 전 이름) 사건을 두고 사회적 공분이 확산하는 가운데 이번 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싶다’가 이번 정인이 사건의 취재 뒷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정인이의 사망 전날 모습이 담긴 CCTV가 공개되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1244회 방송을 맡았던 이동원 PD는 지난 8일 ‘그알’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시청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이 PD는 정인이가 숨지기 전날 어린이집 CCTV를 공개하면서 “도대체 정인이의 사망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 작가가 사망 전날 CCTV를 천천히 다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PD는 “작가님이 말하기를 힘 없는 아이가 옷의 끝자락을 만지작 거리더라고 하더라”면서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말씀하시기를 그날따라 예쁜 옷을 입고 왔는데 꼭 처음 입어보는 옷인 것처럼 어색한 옷이었고, 자꾸 끝자락을 만지작거리던게 기억에 남는다고 하더라”고도 했다.
이 PD는 이어 “사망하기 전날 아마도 장기에서 출혈이 있었던 상황일텐데 그나마 그날 조금 예쁜 옷을 입고 왔는데 그마저도 어색해하던 그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고 말을 이어갔다.
이같은 정인이의 행동을 두고 한의학 커뮤니티에서는 ‘순의모상’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순의모상은 병이 위중해 의식히 혼미한 환자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옷자락 등을 만지작거리고 더듬는 병증으로 위중한 병후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이 PD는 ‘정인이가 사망 전날 갑자기 등원하게 된 배경’을 묻는 시청자의 질문에 “지난해 9월23일 3차 신고 이후 명절 연휴 등의 여러 이유로 어린이집에 자주 나오지 않았던 정인이가 사망 전날 갑자기 등원했다”고 상황을 전한 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정인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다고 요청했는데, 양부모가 자택 방문을 거부해서 어린이집에서 보기로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덧붙여 이 PD는 정인양의 양모가 인터넷에서 어묵을 공동구매한 것에 대해서는 “(정인이) 사망 당일 낮 12시29분에 어묵 공동구매하겠다고 올려 놓은게 있었다”면서 “아마 응급실에서 올렸을 거라고 저희는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더불어 이 PD는 “사망한 다음 날, 양모가 (어묵을 함께 구매하겠다고 한) 구매자에게 ‘애들 데리고 놀이터에서 놀까요’ 연락을 했다”면서 “양모가 첫째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와서, 어묵을 전달해줬다”고 설명했다.
당시 어묵을 전달받았던 지인은 정인이의 사망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이 PD는 “며칠 뒤 뉴스로 (사망 소식을) 알게 됐다”면서 “그 지인분이 너무 충격을 받으셔서 펑펑 울면서 어묵을 버렸다”고 했다.
이 PD는 이어서 “그알은 끝까지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언제든 취재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후속 보도를 할 것”이라면서 “정인이를 걱정하는 많은 분도 각자가 할 수 있는 일,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앞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 2일 생후 16개월인 정인이가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숨진 사건을 다뤘다.
정인이는 생후 7개월쯤 양부모에게 입양된 후 불과 271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정인이의 사망을 두고 양부모는 사고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인이의 사망 당시 응급실에서 정인이의 상태를 진료한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방송에서 정인이의 배를 찍은 사진과 관련, “이 회색음영 이게 다 그냥 피다. 그리고 이게 다 골절”이라면서 “나아가는 상처, 막 생긴 상처. 이 정도 사진이면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아동학대”라고 분노했다.
이어 남궁 전문의는 “사진을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다”면서 “갈비뼈 하나가 두 번 이상 부러진 증거도 있다. 온 몸에서 나타나는 골절. 애들은 갈비뼈가 잘 안 부러진다. 16개월 아이 갈비뼈가 부러진다? 이건 무조건 학대”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결정적 사인은 장기가 찢어진거다. 그걸 방치했다. 바로 오면 살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방송에서는 정인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의 CCTV도 공개됐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정인이의 모습을 본 소아과 전문의는 “감정이 없어 보인다. 정서 박탈이 심해 무감정 상태일 때 저런 행동을 보인다”고 상황을 짚었다.
당시 어린이집 선생님이 정인이를 안아주며 세워줬지만 정인이는 걷지를 못하는 모습이었다. 정인이의 볼록한 배를 본 배기수 교수는 “장이 터져서 장 밖으로 공기가 샌 거다. 통증 중 최고의 통증일 것”이라며 “애가 말을 못해서 그렇지 굉장히 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알고싶다를 진행하는 MC 김상중은 “아이의 얼굴 공개를 두고 깊고 길게 고민했다”면서 “하지만 아이의 표정이 그늘져가는 걸 말로만 전달할 수 없었기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상중은 이어 “같은 어른이어서,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 늦게 알아서, 정인아. 미안해”라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한편 방송은 정인이가 입양된 후부터 사망하기 전까지의 아동학대를 당한 징후들을 자세하게 전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이 아동학대 정황 의심 신고를 세 차례 받고도 양부모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는 등의 내용도 방송에 담겼다.
이 부부는 정인이 입양 후 입양 가족 모임에 참석하며 입양아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특히 지난해 EBS ‘어느 평범한 가족’에도 출연하며 “입양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축하받을 일”이라며 입양을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양부모의 모습과는 달리 정인이의 몸은 멍과 상처 투성이었으며 소아과 전문의와 어린이집 교사들은 아동학대를 눈치채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정인의 양부모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결국 정인이는 지난해 10월13일 서울 목동 한 병원의 응급실로 실려 와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사망했다. 당시 정인이는 장기가 찢어져 복부 전체는 피로 가득 차 있었고, 골절 부위도 여럿이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지난 11월 정인이의 양부모를 아동학대치사 및 아동복지법상 신체적 학대와 방임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양모를 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양부는 아동학대 방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이와 관련, 정인이 양부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청와대 국민청원은 지난달 20일 답변 요건인 동의자 수 20만명을 넘긴 23만명으로 마감됐다.
한편 정인이 양부모의 첫 재판을 앞두고 살인죄 적용 여부에 관심이 모인다.
10일 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는 오는 13일 아동학대처벌법 위반(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인이 양모 A씨와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양부 B씨의 첫 공판을 연다.
A씨는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정인 양을 상습 폭행·학대하고, 등 부위에 강한 충격을 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또한 지난해 3~10월 수차례에 걸쳐 정인 양을 집이나 자동차에 홀로 방치하는 등 정서적 학대 혐의도 받는다.
B씨는 정인 양이 학대를 당하고 건강 상태가 악화됐음을 인지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숨진 정인이는 소장과 대장, 췌장 등 장기들이 손상됐고, 사망 원인도 복부 손상에 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인이에게서는 복부 손상 외 후두부와 좌측 쇄골, 우측 척골, 대퇴골 등 전신에 골절·출혈이 발견되기도 했다.
다만 아직 어떤 방법으로 충격이 가해졌는지는 밝혀지지 않아, 검찰은 A씨에게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정인이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의들에게 재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김경훈기자 styxx@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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