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월 12일 오전 10시 중앙청 제1 회의실.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제안과 정국 구상을 쏟아냈다. “남북상호불가침협정 체결에 동의한다면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북한의 식량 사정이 어두운 것이 사실이라면 동포들을 위해 식량 원조를 제공할 용의도 있습니다.” 애초에 불가침협정을 거론한 쪽은 북측. 1962년 6월 최고인민회의의 편지 형식으로 서로 무력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협약 체결 제의를 처음 꺼냈다.
우리 측은 대응하지 않았다. ‘외세 배격’이라는 전제 조건이 붙은 평화협정 체결 제안을 수용할 경우 자칫 정전 체제의 붕괴와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북한은 더욱더 평화 공세를 펼쳤다. 김일성 내각 수상은 1963년 10월 이런 말까지 내놓았다. “남조선이 자립 경제를 하려면 북조선과 합작을 해야 한다. 합작만 한다면 우리는 남조선 군대도 먹여 살릴 수 있다. 합작하려면 조건이 있다. 미국 놈들 반대하고 일본 군국주의를 반대하는 조건에서만 합작이 가능하다.”
남측이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말의 성찬을 풀어놓은 것이다. 당시 남측은 최악의 식량 부족에 직면했던 상황. 이리저리 쌀을 구하려 애쓰며 북측의 식량 원조 제의와 집요한 불가침협정 주장에 대해 침묵을 이어가다 1974년 역제안을 내놓았다. 박 대통령의 카드는 조건부 불가침협정. 무력 침공 포기 선언과 내정간섭 금지, 휴전협정 존속을 조건으로 불가침협정을 맺자고 역제안했다. 북측은 이에 태도를 바꿔 미북 간 평화협정 체결로 방향을 틀었다.
박 대통령은 3년 뒤 한 걸음 더 나가 주한미군 철수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북 제안의 배경은 자신감. 그는 “우리가 먹고도 북한 동포에게 원조할 여유가 있다”며 “식량 부족에도 전쟁 비축용 식량을 그대로 놔두고 있는 것은 이해되지 않지만 그들이 받겠다면 언제든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1977년 수출 100억 달러와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목표를 조기 달성했던 자신감으로 남북 대화의 주도권을 잡았던 셈이다.
남북은 이후에도 끊임없는 제안을 내놓았다. 서로 식량을 주고받은 적도 있다. 변하지 않는 점은 딱 한 가지. 평행선 속에서도 확고한 비교 우위에 있을 때만 적극적으로 제안할 수 있었다. 44년 전 획기적 대북 제의와 오늘날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우리의 곳간은 평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개발 연대의 강요된 미덕이던 ‘국민 총화’의 현주소는 어디쯤 있는지.
/권홍우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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