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서는 야권 후보들 간 ‘단일 후보’ 밀당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11일 뜻밖의 소식이 하나 들려왔습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홍준표 무소속 의원이 ‘우연히’ 만난 겁니다. 두 사람 모두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 머물고 있는 조계종 종정 진제스님에게 새해 인사차 사찰을 찾았다가 ‘우연한 만남’ 형식으로 회동 후 산행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안 대표와 홍 의원은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각각 24.03%, 21.41%의 득표율을 기록한 유력 정치인인데다 제1야당 국민의힘의 ‘견재와 구애’를 동시에 받는 드문 정치인들입니다. 24.03%와 21.41%를 단순 합산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득표한 41.08%보다 4.36%포인트가 더 많다는 점도 주목할 사실입니다. 불발은 됐지만 이날 안 대표는 부산시장에 출마한 이언주 ·박형준 전 의원과도 회동을 모색했습니다. 즉, 안 대표가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를 노리는 것으로만 보이지 않는 행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홍 의원도 차기 대선 출마를 접지 않았다는 점에서 단일화 ‘너머’에 보수 정계개편의 서막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요.
보수 정계개편의 '서막'…안철수-홍준표 회동
무슨 뜻일까요. 낭중지추는 능력과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스스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는 뜻이고, 난득호도는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며 살기는 힘들다는 뜻입니다. 홍 의원은 결국 앞으로 행보를 ‘낭중지추’가 아닌 ‘난득호도’처럼 하겠다는 것으로 읽힙니다. 즉, 어리숙하게 살 테지만 3당합당(민정당+통일민주당+공화당)을 하면서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던 YS의 길을 가겠다는 뜻으로 비록 지금은 어리숙하지만 종국에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겁니다.
일각에서는 이날 만남을 계기로 ‘레드 찰스(레드 홍준표+찰스 안철수)’ 공조가 가시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홍준표 의원은 향후 대권 행보를 두고, 안철수 대표는 3개월 후 치러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두고 ‘윈윈’ 전략을 취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사실 최근 야권의 화두가 된 ‘야권단일후보’는 잊혀진지 오래지만 2017년 19대 대선 당시 ‘홍준표+안철수+유승민’ 대권 후보 간에 처음 제시된 ‘아젠다’ 입니다. 보수야권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안철수+김문수’단일화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현 집권당인 민주당의 ‘단골 메뉴’인 단일화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 분열과 ‘궤멸’을 맞아 보수 야권에서 제시됐고 또한 좌절됐습니다.
알고 계신 것처럼 87년 이후 후보 단일화는 언제나 민주·개혁 세력의 의제였습니다. 후보 단일화 실패도 후보 단일화 성공도 늘 민주당 쪽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까지 이어진 보수 정당에서는 후보 단일화가 정치적 의제로 떠오른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랬던 보수정당이 궤멸수준에 이르자 2017년 5·9대통령 선거를 앞둔 4월26일 여의도 한 호텔에서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중도·보수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위한 시민사회 원탁회의’라는 긴 명칭의 회의가 열렸습니다. 물론 결과는 ‘결렬’됐습니다. 그 뒤 2018년 지방선거에서 ‘김문수-안철수’ 서울시장 단일화를 요구하는 보수 논객들의 주장에 단일화론은 선거일 직전까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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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표를 많이 받는 후보가 당선됩니다. 결국 ‘표’를 끌어모아 당선되기 위해 단일화를 추진하곤 합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세력은 과거와 달리 약자로 전락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단일화를 추진했지만 결과는 ‘2017년 대선, 2018년 지선, 2020년 총선’까지 내리 패배했습니다. 물러날 곳도 없는 절박한 상황에 이날 ‘안철수-홍준표’회동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들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또 무엇을 목표로 했을까요. 아마도 서울시장선거를 ‘터닝 포인트’로 삼아 내년 대선 승리를 다짐했을 터입니다. 수도권 한 여당 의원은 “단일화가 성사될 것을 보인다”며 “야당이 내리 패배한 이후 이번만큼(서울시장 보선)은 승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후보 단일화를 이루게 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실제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후보 단일화인 87년 김영삼-김대중 후보 단일화 실패 이후 현재의 여권은 꾸준히 단일화 성사와 대선 승리를 등치시켰습니다.
1997년 대선에서 야당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집권에 성공했고, 우여곡절이 있지만 2002년 대선에선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시도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물론 단일화가 승리를 장담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2012년 대선에서는 안철수 후보의 전격 양보에 당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사퇴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야권 단일후보로 나섰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표를 끌어모으는 '단일화'…서울시장선거 '터닝포인트'
실제 조원씨앤아이가 시사저널 의뢰로 지난해 12월 26~27일 만 18세 이상 서울시민 1,003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안 대표가 ‘야권 단일 후보’로 나와 ‘민주당 후보’ 박영선 중기벤처기업부 장관과 대결할 경우 안 대표 지지율은 42.1%, 박 장관 지지율은 36.8%로 나타났습니다. 야권 단일화가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으로 이뤄지는 경우에는 박 장관(37.5%)이 나 전 의원(32.9%)에 앞서는 것으로 나온 만큼 안 대표에 대한 야권의 기대감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2022년 대선까지 연동되는 '보수야권단일화'
박원순 전 시장의 강력한 지지율을 돌이켜 보건 데 당시 단일화는 사실상 ‘2등’ 싸움이었지만 이번엔 보수재편이라는 주도권을 쥐기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됩니다. 당시엔 무르익지 않았지만 ‘’安‘으로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 탓에 이번 ‘단일화’는 내년 대선까지 연동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 대표가 보수야권 단일후보로 서울시장에 당선될 경우 안 대표는 내년 대선에 나가지 않더라도 차차기를 노릴 수 있는 ‘세력’을구축할 수 있습니다. 박 전 시장이 시민단체 출신으로 무소속 후보였지만 이후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른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의해 복당이 막힌 홍준표 의원도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안 대표와의 연대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서울시장 안철수·2022년 국민의힘 대선후보 홍준표’ 어색한가요. 앞서 밝힌 대로 두 후보의 지지율의 단순 산술적 합산은 문 대통령의 득표율 41.08%보다 4.36%포인트가 더 많았습니다. 동화사 회동이 단순하지 않은 이유와 단일화 ‘너머’의 보수재편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송종호기자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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