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됐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그늘에 머물고 있다. 한 주 후면 중앙방역대책본부가 가동된 지도 꼬박 1년이 된다. 이 미세한 바이러스는 우리의 신체는 물론 정신까지 오염시키며 여전히 진화하는 중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은 ‘코로나 블루’를 넘어 더 다양한 색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장기화하는 우울감과 불안감이 분노로 변화한 ‘코로나 레드’, 길어지는 스트레스와 암담한 경제 위기를 상징하는 ‘코로나 블랙’ 같은 신조어가 그 예다. 코로나19의 장기화 속에 또 어떤 색상들이 등장할지 염려도 된다.
다행히도 의료계의 헌신으로 백신과 치료제 보급이 머지않았고 코로나19 회복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우리의 정신을 회복하는 일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문화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국악, 그리고 국악이 지닌 치유와 회복, 위로의 가치는 코로나19 극복의 힘이 될 수 있다.
국악 중에서도 우륵의 일화를 소개해본다. 몰락하는 가야를 떠나 신라에 머물며 제자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전수한 우륵은 제자들의 연주를 듣고 이렇게 평했다. “즐거우나 무절제하지 않고, 슬프나 비탄에 빠지지 않으니, 이를 바르다고 할 만하다(樂而不流, 哀而不悲, 可謂正也).” 자칫 음악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경망스럽고 다른 쪽으로 치우치면 경직되니 절제 속에서 표현할 줄 아는 음악이야말로 정중동(靜中動)의 멋을 담는 것이요, 이것이 정악에 담겨야 할 바른 정신이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혼란의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정악을 명상하면서 잠시나마 나를 돌아본다면, 잃어가는 삶의 방향과 중심을 찾고 회복할 수 있는 특별한 계기가 될 것이다.
내면을 치유할 정악과 함께 우리를 다독이며 위로할 국악은 친근한 민요에서도 찾을 수 있다. 끊임없이 힘든 일을 하면서 나오는 시름과 한탄을 우리 선조들은 노랫말로 엮어 일상의 고단함을 위로했다. 혼자 또는 같이, 전문 소리꾼이 아니어도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민요에는 오랜 세월을 견뎌낸 우리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과거의 노래가 아닌 이 시대의 노래요, 어려움을 지나는 우리가 소리 내고 들으면서 위로하며 나눌 음악인 것이다.
블루·레드·블랙으로 색을 달리하며 코로나19가 세상을 물들이고 있지만 국악의 다채로운 가치가 번져나간다면 분명 우리 사회는 다시 깨끗하게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가야국은 멸망했지만 가야금은 1,6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주되고 있고 악보 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민요도 시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이들의 강인한 생명력이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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