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대한 추가 규제를 발동했다. 남중국해와 관련해 중국해양석유(CNOOC), 안보 위협을 이유로 샤오미(휴대폰 제조사), 중국상용항공기공사(COMAC) 등 9개 업체를 블랙리스트에 추가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업은 미국으로부터 신규 투자를 받을 수 없고 미 투자자들은 이들 회사의 지분 전량을 처분해야 한다.
‘위대한 미국의 재건(Build Back Better)’ 슬로건을 내걸고 대선에 승리한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10일 계획을 밝혔다. 4년 전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첫 행사로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 체결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보란 듯이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탈퇴했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가 탈퇴했던 파리협약에 복귀하고 이슬람 국가 출신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한 것을 취소시키는 등 10여 건에 대해 행정명령을 발동해 트럼프 이전의 미국으로 재건할 계획이다.
이들 이슈 외에 국제사회는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부과한 관세를 제거하고 중국에 대한 무역 규제를 철회할 것인가에 관심이 높지만 통상 정책 현안에 대해서는 바이든 당선인은 물론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임명된 캐서린 타이도 입을 다물고 있다. 얼마 전 타이 내정자는 외부 강연에서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했고 핵심 분야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
트럼프 시절 잘못한 정책을 되돌려놓겠다는 취지인 미국의 재건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결정하기 가장 어려운 분야가 바로 통상 정책이다. 미 민주당은 중산층과 노동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 조직이며 바이든 당선인도 당선 직후부터 줄곧 미국 내 투자 확대를 통해 노동자의 생산성을 개선하고 미국의 경쟁력을 회복할 것임을 강조해왔다.
하나의 지구촌 경제로 통합된 오늘날 경제 체제에서 국내 정책과 대외 통상은 서로 맞물려 있다. 국내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통상 정책을 동원해야 한다. 그런데 통상 정책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중 미국민들의 지지가 가장 높았던 분야는 통상 정책, 특히 대중국 정책이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시장 경제화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했던 중국이 사회주의 계획 경제적 요소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경제 규모를 키웠고 기술 탈취로 미국의 글로벌 지위를 넘본다는 트럼프 주장에 절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여전히 동의하고 있다.
이제 정권을 되찾은 민주당에서는 통상 정책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트럼프 정책 유지를 지지하는 그룹과 이전으로 복귀를 요구하는 그룹이 뒤섞여 있다. 이번 대선에서 실리콘밸리 정보통신기술(ICT) 회사를 비롯한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바이든 후보에게 베팅했고 트럼프 이전으로의 복귀를 기대하면서 거액의 선거 자금을 지원했다. 하지만 중산층과 근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민주당은 트럼프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
선거 과정에서 바이든 후보는 이미 이러한 혼선에 처해 있었다. 중국에 대한 인식을 묻자 ‘적은 아니고 경쟁자’라고 했다가 얼마 안 돼 중국의 체제적 문제를 제기했다. 민주당이 추구하는 가치인 인권에 대해 언급하면서 중국에 대한 강력한 제재도 예고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동맹국과 연대해 트럼프 행정부보다 스마트하게 중국을 견제할 것이라는 정도로 대충 얼버무렸다.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과 경제 불황 탈피 등 국내 정책이 우선이고 당분간 중국에 대한 무역 제재를 철회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동맹국들은 트럼프 관세 철회를 기대했지만 통상 정책의 현상 유지 입장만 반복한 셈이다. 예상과 달리 타이 변호사를 대통령 취임 전 USTR에 임명한 것은 의외였지만 타이 역시 민주당 내 입장이 확립되기 전까지 바이든 표 통상 정책을 구체화할 수 없을 것이다.
지켜봐야 알겠지만 트럼프 이전으로 통상 정책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타이가 첫 공식 일정으로 노동계 인사들을 면담한 것도 예사롭지 않고 퇴임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발동한 중국에 대한 제재에 대해 새 행정부가 조용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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