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세 상병과 23세 하사.’ 고참 병사들은 갓 전입해온 하사를 ‘길들이라’며 상병을 윽박질렀다. 상병은 고참에게 얻어맞으면서도 하사를 교육하는 하극상을 저지르지 않았다. 60대 기자가 오래된 기억을 굳이 소환한 이유는 최근 발생한 진정서 사건과 맥락이 같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육군의 일부 부사관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넣었다. ‘참모총장이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창군 이래 처음 발생한 이 사건은 충격적이다. 인격권 침해 주장의 당위성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금도 대부분은 서로 예우하는 상황 아닌가. 나이 많은 부사관에게 젊은 장교가 의무적으로 존칭을 써야 한다면 23세 하사도 27세 상병을 존대해야 마땅하다. 부사관들께 여쭙고 싶다. ‘그런 게 군대냐’고. 대다수 국민이 진정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군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 군 내부에서 해결됐어야 할 문제가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외부에 표출됐다면 소통의 부재와 다름없다.
문제는 반성이나 분석, 해결 노력보다 감정과 응징이 더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나라 전체의 기강이 무너진 방증’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만큼 엄중한 사안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면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원인을 분석하고 외국 사례와 비교하는 것이 순서다. 새 법률안 제정이 검토되는 분위기지만 현실을 제대로 투영하지 못하는 법률의 양산은 항구적인 법 위반을 초래할 뿐이다.
전인범 예비역 육군 중장(전 특전사령관)은 미군의 상호 예우 시스템을 강조한다. 행사나 회의 시 지휘관 바로 옆 좌석을 배치받는 미군과 달리 한국군의 주임원사는 말석에 앉거나 아예 끼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차까지 상급을 배차받는 미군 주임원사는 기본을 철저하게 지킨다. 신임 소위에게도 제대로 경례하고 경어(Yes, sir)까지 붙인다. 우리 군대에서도 주임원사단이 먼저 모범을 보여주기 바란다.
기본적인 해법은 사람에게 있다. 인성과 품격을 갖춘 장교와 부사관의 상호 존중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도 전투력 증강을 기대할 수 없다. 군은 태생적으로 위기에 대응하는 조직이다. 쌓인 갈등이 터진 이번 사태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느냐는 오롯이 군의 역량에 달렸다.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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