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공식 취임하면서 한미는 물론 남북·북미·한중·한일관계가 모두 변곡점을 맞았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고립주의’ 기조를 벗어나 전체주의 진영에 대응한 자유민주주의 진영 간 연대·동맹 중심으로 세계 질서를 재편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우리의 외교 안보 전략도 크게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서울경제는 서면과 전화통화 방식을 통해 외교안보 원로 특별좌담회를 마련하고 각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김숙 전 유엔대사(현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범국가기구 설립추진단 공동단장), 신각수 전 주일대사, 권영세 국민의힘 국회의원(전 주중대사)의 포괄적 의견을 들어봤다. 다음은 한미관계에 관한 이들의 견해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정부의 성과를 계승해야 하며 싱가포르 선언이 북미 대화의 시작점이 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방안에 현실성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윤병세: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대폭 수정할 것을 이미 예고했습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지명자와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 지명자가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대북 접근법과 정책 전반을 포괄적으로 재검토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겁니다. 당연히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도 그 주요 재검토 대상이 될 것입니다.
싱가포르 공동 성명을 포함한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과 유산에 대해 그간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팀은 다양한 계기를 통해 부정적인 입장을 강하게 표명해 왔습니다. 현재로서는 바이든 정부가 이를 계승하길 기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다만 정책 재검토 과정에서 일부 요소들은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 수정돼 활용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아마도 ‘재건축’과 ‘리모델링’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책 재검토 과정에서 동맹국인 한국·일본 정부의 의견, 북한의 도발 여부, 중국의 협조 여부 등이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김숙: 저는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방식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표명했다고 느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전에도 핵능력 축소와 비핵화에 북한이 동의해야만 만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블링컨 내정자도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대북 정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얘기했고요. 문 대통령이 트럼프 정부에서 이뤘던 성과를 언급했는데 저는 그 성과가 뭔지 의문이 듭니다. 트럼프 정부와 아주 명확한 차별화를 시도하는 바이든 정부의 공식 입장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2018년 싱가포르 회담은 TV 리얼리티쇼와 같은 ‘톱다운’ 외교의 전형인데 이걸 모델로 삼자는 것은 비현실적이에요. 바이든 정부의 외교팀은 몇 달에 걸쳐 대북 정책을 재검토할 것이고 이미 그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아는 한 동맹 존중의 원칙 아래 한국·일본 등과 긴밀하게 협의할 예정입니다. 한미는 싱가포르 회담을 시작점으로 삼는 게 아니라 전문가·실무진 선에서 ‘바텀업’ 방식으로 협의해야 할 것입니다. 어찌 됐든 지난 4년(트럼프 정부의 성과)은 배척될 것이에요. 노파심에 더 얘기하자면 ‘완전한 비핵화’ 추구 목표가 희석될 정도의 대북 유화정책이나 남북 간 독자적 행보 역시 미국은 수락하지 않을 겁니다.
▶신각수: 바이든 정부는 자신의 외교 안보 정책상 필요에 따라 트럼프 정부의 성과를 취사선택해 이어받을 것입니다. 싱가포르 회담은 당시 훨씬 유리했던 미국의 입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회담입니다. 합의 내용 자체도 완전한 비핵화는 후순위로 밀려 있고 매우 추상적이죠. 바이든 정부가 이를 기준으로 출발할지는 미지수입니다.
트럼프 정부의 북핵 교섭은 비핵화의 정의조차 합의하지 못한 채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예요.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비판해 왔다는 점에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정책을 재검토하지는 않더라도요. 다만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의 의도·취약점, 미국의 최저선이 드러난 만큼 바이든 정부가 이를 토대로 전략을 세울 수는 있을 겁니다.
▶권영세: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인선을 보니 오바마 정부 때 사람들이 대거 들어왔습니다. 이에 따라 ‘오바마 2.0’이 되는 게 아니냐, ‘전략적 인내’가 또 반복되며 북한의 도발수위가 높아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그런 차원에서 싱가포르 회담을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는 일단 트럼프 정부의 접근법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정상끼리 보여주기 식으로 만나는 것보다는 과거 이란 핵 합의 때처럼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접근법을 활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바이든 정부도 싱가포르 회담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러나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우리 정부가 트럼프 정부 때와 같은 기조로 바이든 정부를 대한다면 처음부터 한미동맹 간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죠. 바이든 정부에 맞춰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이든 정부는 미중 갈등을 전제로 한 전통적 동맹 복원에 주력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습니다. 전시작전권 전환, 한미연합군사훈련, 반중연대 참여 등 갈등 위험 요소도 많은데 우리가 동맹으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까요.
▶김숙: 동맹 복원에 주력한다는 것은 우리로서 아주 환영할 입장이라고 봅니다. 한미동맹 간 현안은 항상 존재했어요. 노무현 정부 때는 용산 주한미군 기지 반환, 이라크 파병, 미국 대사관 이전 등 9~10개 현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기도 했죠. 한미 간에 현안이 많은 건 이상한 게 아닙니다. 바이든 정부는 너무 일방적으로 동맹을 훼손한 트럼프 정부와 달리 전통적 동맹의 ‘가치’도 복원하겠다는 입장이에요. 동맹 간 협상에도 속도가 붙을 겁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의 경우 문 대통령 기자회견을 보면서 3월에 실시는 하면서 한미 간 협의를 하겠다는 입장으로 이해했습니다. 미 국방부나 주한미군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필수요소처럼 중요시합니다. 논의가 바람직하고 희망적인 방향으로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군사적 성격을 띤 한미 현안에 미국의 요구가 강하면 강할수록 중국이나 북한이 반발할 수 있다는 점은 물론 딜레마입니다. 그러나 이는 감수하고 가야죠.
한미동맹을 가치 동맹이라고 본다면 현안을 가치중립적, 전략적 모호성 전략으로 해결한다는 건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민주주의 연대, 쿼드 플러스(미국·일본·호주·인도 다자 안보협력체(쿼드)에 한국·베트남·뉴질랜드 등 국가들을 추가하려는 구상) 등에 적극 참여해 동맹의 외연을 넓혀야 합니다.
전시작전권 전환은 현 정권 내에 성급히 추진하면 커다란 실수가 될 겁니다. 물리적으로도 가능하지 않아요. 이미 시한을 몇 차례 연기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 교훈에 따라 시한 기반이 아닌 조건 충족이라는 원칙에 양국이 합의했습니다. 한국군 핵심 군사능력 확보, 동맹의 포괄적인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 능력 확보, 안정적인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역내 안보환경 등의 조건을 충족하기로 합의한 이상 시한을 못 박지 말고 그 조건에 맞춰야 합니다.
▶윤병세: 바이든 정부가 동맹국 중시 정책을 공언하는 것은 (한미관계가) 정상궤도로 향할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동맹국의 의무와 역할도 합리적으로 늘리라는 요구이기도 하죠. 그런 측면에서 전작권 전환 조건 충족 문제, 한미연합군사훈련 재개뿐 아니라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와 중거리 미사일 배치 여부,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와 주둔 형식, 쿼드와 대중 공동 전선 참여, 종전선언 추진, 대북 제재 해제 여부와 그 방식 등은 갈등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을 가장 커다란 도전이라고 보고 있으므로 현 정부 임기 중 북핵 관련 한미일 협력 강화, 대중국 공동전선 참여 등을 우리에게 강하게 기대할 거예요.
오바마 정부 때 한국 보수 정부와의 관계가 이례적으로 ‘한미동맹 역사상 가장 강력한 관계’ ‘빛 샐 틈 없는 동맹’ 등으로 불린 이유는 북핵, 동맹 현안 등 수많은 난제를 신뢰의 토대 위에서 행동으로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포괄적 전략 동맹의 일원으로서 북핵 대응 등 동맹의 핵심이익·가치와 관련된 분야에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안보의 핵심축(린치핀) 역할을 충실히 담당해야 합니다. 한미연합사령부 구호처럼 ‘같이 간다’는 자세를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북한의 잠수함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를 추적·탐색하는 다국적 대잠훈련에 당사자인 우리 군이 불참한 것은 무책임한 행동으로 비쳤을 겁니다.
▶신각수: 한미동맹은 당면한 혼돈의 전환기를 헤쳐나가는데 필수인 우리의 소중한 전략자산입니다. 미국이 트럼프 정부 4년이 남긴 부정적 문제를 상당히 안고 있지만 여전히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리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우리의 평화와 번영이 한미동맹과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기반으로 구축된 만큼 이를 잘 가꾸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정부의 출범으로 한미관계는 트럼프 정부 시절보다 좋은 여건으로 변하게 된 건 사실입니다. 방위비분담은 조기에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전시작전권은 (문 대통령) 임기에 얽매이지 말고 전환에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는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아직 충분한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양국 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무리 없이 추진해야 합니다.
바이든 정부의 동맹 강조에는 동맹의 책임 분담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동맹은 기본적으로 쌍무적이라는 점에서 우리 능력에 부합하는 만큼 기여할 필요가 있지요.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중견 국가이고 개발도상국에서 산업화·민주화를 달성한 독특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중시하는 민주주의·인권·반부패·환경 등 가치중심 외교에 힘을 보탤 수 있습니다. 보다 능동적으로 미국에 대한 외교 지렛대를 늘려 가면 미중 대립 가운데서도 우리의 독자적 전략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권영세: 리더(이끄는 사람)와 레더(이끌리는 사람)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반면 바이든 시대에 맞춘 대미·대중·대일 등 다른 외교정책은 존재하는지 의문입니다. 거의 실종 상태죠. 그나마도 외교 정책 대부분은 국내 선거용입니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우리의 자유를 지켜주는 나라이고 가치와 무기를 공유하는 나라입니다. 중국과의 관계도 미국과의 관계가 공고해야 발전을 꾀할 수 있을 겁니다.
최근 문 대통령은 “한미연합군사훈련 관련 논의를 북한과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바이든 시대에 한미동맹의 첫 단추 잘못 끼운 거예요. 이런 점이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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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 취임 초부터 대북전단금지법 문제가 양국간 갈등 요인으로 떠올랐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권영세: 대북전단금지법은 우리 시민단체의 전단 살포 행위뿐 아니라 대북 정보 유입도 막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의 알 권리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시민단체들은 그간 DVD나 여러 구호물품도 뿌려왔는데 이런 것마저 전부 금지한 법이거든요. 심지어 우리 시민단체가 전단을 살포하면 처벌하겠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미국은 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각수: 바이든 정부의 가치 지향적인 외교 안보 정책의 주된 분야는 민주주의 확산과 인권 신장입니다. 대북전단금지법은 기본적 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대북 정보 유입은 북한의 변화를 추동할 주요 수단입니다. 우리 대북정책의 근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막는 건 타당하지 않은 조치입니다.
한국은 민주화와 인권 면에서 아시아에서 가장 앞섰던 나라입니다. 탈북 어부 강제송환, 북한의 공무원 사살 행위에 대한 침묵, 북한 인권 관련단체에 대한 압박 등 북한을 의식한 한국의 반인권적 정책은 현저한 국익 손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미관계에도 갈등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고요. 국제사회의 비판이 많다는 점에서 하루빨리 시정해야 합니다.
인권 문제는 북한이 국제사회로 나오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입니다. 다양한 수단을 통해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문제를 직접 제기하기가 쉽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권문제가 개선되면 북핵 합의 이행 촉진, 북한 주민의 삶 개선, 북한 경제에 대한 외부 지원 장애 제거 등 제반 효과가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죠.
▶김숙: 인권은 인류 보편적으로 확립된 규범입니다. 우리 헌법에도 국제법을 존중할 의무가 들어가 있어요. 이걸 일각에서 내정간섭이라고 말하는 건 ‘우물 안 개구리’ 식 생각입니다. 편의주의적이고 아주 잘못된 대응입니다. 북한 관련 사안은 보편적 가치로 대응해야 합니다. 우리는 남북관계를 너무 신경 쓴 나머지 최근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공동제안국에도 불참했습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의 의구심과 비판도 받았습니다.
대북전단금지법과 관련해서는 미국 하원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의 청문회도 예고됐습니다. 한미동맹 호기인 바이든 정부 초기에 대북전단 문제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건 국익 차원에서도 굉장히 잘못된 것입니다. 북한 주민에게 외부 세계의 정보를 제공해 인권을 증진한다는 건 바이든 정부의 기본 전략이에요. 대북전단금지법은 다소 무리하게 추진됐고 국제사회의 기본 방침에도 반합니다. 잠재적 갈등 요소로 심화되기 전에 법안을 폐기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만약 그게 어렵다면 신속하게 잘못된 부분을 수정·보완해야 돼요.
▶윤병세: 한국은 민주화 이래 국제 인권 외교를 주도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2006년 유엔 인권이사회가 창설된 이후 현재까지 5회째 인권이사국을 역임하고 있어요. 2016년에는 이사회 의장까지 수임했습니다. 또 민주주의 공동체 운영이사회, 발리 민주주의 포럼, 유엔 민주주의 기금에 이사국·참여국으로 활동하며 전세계 인권과 민주주의 확산에 적극 기여해 온 모범 국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대북전단금지법 통과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인권 침해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은) 아마도 한국 민주화 이후 최초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국제사회의 추이와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미국 하원 청문회가 예고된 대로 개최될 경우 북한이 아닌 한국 정부의 인권 정책이 40여 년 만에 미국 의회에서 논의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 사실 자체가 인권과 민주주의 증진을 내세운 바이든 정부에 부정적인 신호를 줄 겁니다.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나 EU(유럽연합) 인권특별대표 등이 국제인권 무대에 정식으로 문제 제기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문제로 문재인 정부 마지막 임기 1년 동안 불필요하게 국가 이미지가 실추될 수 있어요. 외교력이 자칫 낭비될 수도 있고요. 지금이라도 국제사회의 우려를 잘 경청해 개선할 부분은 개선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한국 정부가 우리 스스로의 안보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바이든 정부와 협력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윤병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번 8차 당대회에서 핵추진 잠수함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극초음속 무기, 초대형 핵탄두 등을 개발·생산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우리를 겨냥한 다양한 전술 핵무기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가 국방력 강화 입장을 분명히 한 상황에서 우리의 안보 전력 강화는 분명 시급한 문제입니다.
오바마 정부에서 한미 간 합의된 다양한 안보 전력 강화 계획, 확장억제력 강화 대책을 토대로 바이든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맹 현대화 작업은 오스틴 지명자가 청문회에서 강조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실존적 안보 위협에 대한 미국 핵우산의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 확장 억제력 전진 배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식 핵협의 장치 고도화 등을 병행하는 전략을 조속히 협의해야 합니다. 앞으로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안보 역량을 동시에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북한이 당대회에서 요구한 첨단군사장비 반입 중단, 한미연합군사훈련 중지에 응하는 것은 북한에 우리 안보 문제에 대한 거부권을 주는 셈이 됩니다.
▶신각수: 재래식 무기 분야에서는 북한을 압도할 전력을 상당 부분 구비했으나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에 대비하는 데는 현저히 뒤처졌죠. 현재 우리가 추진 중인 3K(킬 체인(Kill Chain),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대량응징 보복(KMPR)) 정책만으로는 시간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미 협력을 통해 전력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억지 차원에서는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강구돼야 합니다. 우선 한미 확장억지전략 고위급회의의 역할을 강화하고 임무·절차를 구체화해야 합니다. 북핵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한미 공동관리 아래 전술핵을 재배치하거나 핵순항미사일을 구비한 핵잠수함을 한반도 연안에 배치하는 방안 등을 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방어 차원에서는 수도권 상층 방어가 부족한 점을 감안해 사드 구입·배치, 미사일방어 체제 운용에 필요한 한미 정보공유 체제 구축 등을 추진해야 하고요.
▶김숙: 지난해 10월과 올 1월 북한의 야간 열병식을 보니 북한은 핵·미사일뿐 아니라 재래식 무기도 발전시켜 왔습니다. 핵무기를 장착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한 전략핵추진잠수함(SSBN) 개발도 공식화했습니다. 무기 차원에서 볼 때 남북한 간 안보 환경이 우리한테 불리하게 변화하고 있어요. 비대칭 전력에서 열세인 데다 그동안 우리가 앞섰다는 재래식 무기의 간격도 줄고 있어서 안심할 수 없습니다.
핵추진 잠수함은 디젤추진 잠수함과 달리 무한에 가까운 잠행 거리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해외에서 일어나는 대테러 작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들을 이동시키는 데 유용해요. 북한 SSBN에 대처하는 관점에서 우리도 핵추진 잠수함 개발을 공식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미국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에 난색을 표하고 있고, 전세계 핵 비확산 체제에 위배될 수 있다는 문제는 있어요. 하지만 투명성을 유지하겠다는 쪽으로 국제 사회를 설득해야 해요. 꼭 고농축이 아니더라도 저농축 우라늄으로 잠수함 원자로를 가동할 수 있는 신규 기술도 프랑스 등 해외에 있어요. 50조원이 넘는 국방 예산을 전력 강화에 더 중점을 두고 쓰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됩니다. 자주국방 강화에 더 박차를 가하고 북한 무력도발에 대한 대응 능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핵추진 잠수함 개발 추진이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아요. 우리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면 됩니다.
▶권영세: 지나친 군비경쟁은 지양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급속도로 부상하고 일본도 지속적으로 군비를 확장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우리 군도 장비의 정예화·현대화를 추진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초토화된 상황에서 역내 군축을 했습니다. 이는 독일이 당시 NATO에 편입돼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NATO와 같은 틀이 없습니다. 우리도 전체적인 역내 흐름을 봐서 군사력을 증강해야 합니다. 물론 세밀한 부분에 있어서는 미국과 협의해야겠지요.
/정리=윤경환·김인엽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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