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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의 정치화 심각...'착한 부채'는 없어 재정중독 벗어나야" [청론직설]

[강석훈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익공유제는 포퓰리즘 정책…일자리 없애는 결과 낳을 것

자산 시장-실물 괴리 커져 돈 기업 투자로 흘러가게 해야

바이든시대 복합경제전쟁 예고…국익 지키는 전략 절실

美 금리 인상 등 다양한 리스크 대비 컨틴전시 플랜 마련을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으로 글로벌 경제·통상 환경에 근본적 변화의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다자간 연대를 통한 새 무역 질서 구축을 선언하면서 우리의 통상 외교 역량도 시험대에 올랐다. 강석훈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바이든 시대는 기존의 통상 갈등에 가치 개념이 더해져 복합 경제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면서 “기업을 살리고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해 국익을 지키는 치밀한 전략이 절실한 때”라고 강조했다. 현재 성신여대 경제학부 교수인 강 전 수석은 “미국의 금리 인상 등에 대비해 연착륙 방안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문재인 정권에 대해 “요즘 이익공유제·손실보상제를 비롯해 경제정책의 정치화, 재정의 정치화가 도를 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 정부는 재정 중독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 뒤 “세상에 ‘착한 부채’는 없다”며 재정 건전성을 역설했다. 강 전 수석과의 인터뷰는 25일 성신여대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으로 통상 환경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바이든 행정부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기본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이제는 기술·통상과 함께 가치·체제까지 아우르는 복합 전쟁의 양상을 보일 것이다. 트럼프가 돈의 관점에서만 바라봤다면 바이든은 동맹·민주·인권·환경을 함께 고려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미중 사이에서 국익을 위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은 동맹의 기여를 요구하면서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정공법으로 나올 것이다. 한번 잘못 선택하면 큰 후유증을 낳을 수 있는 상황이다.

성신여대 교수인 강석훈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25일 대학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바이든 시대는 통상 갈등에 가치 개념까지 아우르는 복합 경제 전쟁을 예고한다”면서 “기업을 살리고 국익을 지키는 치밀한 전략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성형주기자




-문재인 정부는 미국 민주당 정부와 ‘코드가 같다’고 얘기하는데.

△큰 틀에서 보면 공화당에 비해 민주당 정부가 시장보다는 큰 정부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일견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시장의 역동성과 자율성을 규제하는 정책을 펼치지 않는다. 기업을 미래 성장의 핵심으로 보고 직접 규제를 가하지 않는다. 환경 산업 육성도 국가 전략 차원에서 추진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는 ‘2050 탄소 중립’ 선언처럼 즉흥적으로 추진할 뿐 아니라 탈원전을 뒷받침하는 정책 수단에 머무르고 있다. 주종관계가 뒤바뀐 것이다. 우리의 경우 현실적으로 탄소를 줄이기가 쉽지 않은데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어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선 과정에서 법인세 인상을 주장했다가 일단 유보하기로 했다.

△비록 법인세 인상이 민주당의 기본 철학이라고 하더라도 위기 상황에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정지출 확대와 법인세 인상처럼 경제의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대선 공약이 아니라 경기를 살리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집권 내내 대선 공약에만 집착하는 분위기인데.

△현 정부의 경우 과거 역대 정부와 달리 지지층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공약이 훨씬 더 많았다. 환경 정책도 국민 컨센서스보다 환경 단체의 견해가 많이 반영됐고 탈원전 정책도 마찬가지다. 노동·기업 정책 공약에도 시민 단체 등에서 주장하던 내용이 많이 반영됐다. 선거를 앞두고 이들을 우호 세력으로 붙잡아두기 위해 더 공약에 집착하게 마련이다. 공약의 기본 정신은 유지하되 구현하는 방법에서는 보다 유연해져야 한다. 주 52시간 근로제만 해도 예외 없이 밀어붙이다가 본말이 전도된 대표적 사례다. 정부가 말장난을 일삼고 국민연금 개혁과 같은 중대 사안을 외면한다면 정부에 대한 불신이 쌓여 애써 내놓은 정책도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 정부는 주요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선한 의도’를 내세우는데.

△현란한 말로 국민을 ‘희망 고문’하기에 앞서 정책을 실현할 수단과 방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소득 주도 성장만 해도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해왔지만 소득을 새로 창출하고 키우는 정책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일자리 문제를 악화시키고 사회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켰다. 경제정책의 정치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경제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기획재정부의 의견은 청와대와 민주당의 한마디에 묵살되고 무너져버렸다. 정치가 정책의 세부 사항까지 일일이 관여하면 큰 후유증을 낳게 된다.

-현 정부 들어 되레 사회 양극화 현상이 심각해졌다는 것인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대표적인 소득분배 악화 정책이었다. 이 정부가 내놓은 정책 대부분이 오히려 사회적 격차를 키웠을 뿐이다. 정부가 애초부터 의도했는지 아니면 무지의 결과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특히 부동산 문제는 사회적 격차 확대의 끝판왕이다. 이제는 단순히 부동산 문제를 넘어 근로 의욕과 기업 할 의지마저 꺾어버리는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

-실물과 금융시장의 괴리가 크다는 우려가 많다.

△저금리 상황에서 부동산이나 증시로 자금이 몰리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다. 다만 우리는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급격하게 봉쇄하는 바람에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더 많이 몰리고 있다. 토끼몰이하듯이 자금을 주식시장에 몰아넣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 실물과 주식시장의 괴리는 지속될 수 없고 언젠가 조정되게 마련이다. 정부의 역할은 급격한 조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증시에 몰려 있는 돈이 기업 투자로 흘러가도록 물꼬를 터줘야 한다. 부동산 시장의 왜곡을 완화하고 실물시장에서도 투자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기업들이 실물 투자를 더 활성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정책을 세워나가야 한다. 지금처럼 경영에 부담을 주는 규제와 제도로는 투자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나가는 정공법이 절실한 때다.

-정치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빌미로 이익공유제 등을 도입하겠다는데.



△정부가 할 일을 민간에 떠넘기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다. 정부 재정을 늘리는 데 한계에 부딪히자 민간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가겠다는 것이다. 기업 이익은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한 대가이자 헌신적인 열정의 결과물이다. 이익공유제는 자본주의 기본 원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반(反)시장적 논리다. 기업이 열심히 노력한 대가를 정부가 강탈해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향후 투자 활동을 위축시키고 일자리를 없애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마다 기업 지원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격변기를 맞아 각국마다 노골적으로 자국 산업 키우기 정책을 펼치고 있다. 과거와 다른 차원의 산업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메모리뿐 아니라 비메모리에서도 우위를 확보하게 되면 아무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대한민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 지금은 다시 한 번 ‘반도체 코리아’로 비약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다.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가 무산되지 않도록 국가 전략 차원에서 기업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 산업의 경쟁력 확보 방안은 무엇인가.

△올해는 대한민국 경제가 변곡점을 맞게 될 것이다. 자동차·철강·석유화학 등 전통 사업이 기본을 이루고 상당수 기업이 미래형 기업으로 전환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정부는 신산업이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제는 대기업 총수들에게 ‘사업 보국’이라는 말을 강요하지 말고 비즈니스맨으로 열심히 뛰면서 세계 최고를 지향하라고 주문해야 할 시점이다.

-올해 한국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경제성장률 수치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세계경제가 조금씩 살아난다면 수출도 괜찮아질 것이고 기저 효과로 인해 3%가량 성장도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성장하더라도 국민 전체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내부적으로 격차가 더 확대되고 산업 간 불균형 문제도 커질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 폭등을 낳은 부동산 시장이다. 올라도 문제이고 급격하게 떨어져도 문제이므로 부동산 시장 연착륙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가 경제정책에서 가장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선 코로나19 위기에서 연착륙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급한 불을 끄겠다며 대출 만기 연장 등을 실시했지만 부실이 한꺼번에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탈출 전략을 미리 세워놓아야 한다. 또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할 경우 금리 상승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우리 주식시장이나 부동산 시장 급락을 가져올 위험이 크다. 다양한 리스크에 대비한 컨틴전시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현 정부는 5년 임기로 끝나지만 대한민국은 50년, 100년 이상을 가야 한다는 소명 의식을 갖고 더 이상 정책을 선거용 포퓰리즘에 동원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임기 말에 접어드는 문재인 정부에 바라고 싶은 점은.

△현 정부는 한마디로 재정 중독에 빠져 있다. 모든 문제를 재정을 동원해 해결하면서 국가 부채 증가의 문제점을 간과하고 있다. 마치 부채를 더 많이 갖는 게 정의로운 것처럼 말해왔다. 세상에 ‘착한 부채’가 어디 있겠는가. 그나마 코로나19 위기를 버텨내는 것도 재정이 건전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재정 건전성이 악화하면 향후 또 다른 위기가 발생할 경우 아예 대처할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런 냉혹한 현실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임기 말을 맞아 방만한 재정 상태를 정리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안정화 방안도 마련해주기를 기대한다.

ssang@sedaily.com

He is…

1964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서라벌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대우경제연구소 금융팀장 등을 지냈다. 지난 1997년부터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로 몸담고 있으며 한국재정공공경제학회 총무이사, 기획예산처 기금평가위원 등을 지냈다.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서울 서초을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국회 기획재정위 간사를 맡았다. 18대 대통령직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을 거쳐 2016년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했다. ‘기회가 강물처럼’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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