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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스포츠라이프
대포통장 막으려다...일상 금융생활 막혔다

[금융사기가 불러온 나비효과]

은행, 감독규정 맞추기 위해

한도제한계좌 깐깐하게 운영

은퇴자·주부·학생 피해 큰데

당국은 "금융사 자율" 선 그어





# 수년 전 은퇴한 60대 한 모 씨는 8개월 전 한 시중은행에 입출금 통장을 만들었다. 은행원은 한 씨가 오랫동안 해당 은행과 거래가 없었고 금융거래 목적을 증빙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출금·이체 금액을 제한한 ‘한도제한계좌’를 개설해줬다. 한도제한계좌로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하루 30만 원, 은행 창구를 직접 찾아도 하루에 100만 원까지만 인출할 수 있다.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재직증명서나 급여명세표 같은 증빙 서류가 없는 한 씨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금융거래 이력이 쌓이면 정상 계좌로 바꿔줄 수도 있다는 말에 한 씨는 이 통장에 보험료 자동이체를 걸고 익숙했던 현금 대신 체크카드 사용도 꾸준히 늘렸지만 은행은 이번에도 한도제한 해제 요청을 거절했다. 한 씨는 “직장이나 소득이 없는 사람들은 통장도 만들기 어려운게 현실”이라며 “금융 사기를 막기 위해 정상적인 금융 소비자 99%의 일상 거래를 제한하는 게 맞는 정책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기금융계좌(대포통장) 피해 예방을 위해 정부 지침에 따라 은행들이 통장 발급 요건을 강화한 지도 6년이 지났지만 현장의 혼란은 여전히 크다. 특히 은행들이 계좌의 사용 목적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빙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면서 한 씨와 같은 고령층이나 직장·소득이 없는 전업주부, 청년에게 불편이 집중되는 형편이다. 소비자는 물론 은행권에서도 이런 절차적 규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지만 은행들은 금융 당국의 감독 규정상 한도제한계좌를 많이 운영할수록 유리한 구조여서 발급을 까다롭게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 당국과 은행권의 행정 편의주의에 금융 소비자의 불편만 커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정부의 대포통장 근절 대책에 따라 지난 2015년부터 소비자가 신규 계좌를 개설할 때 ‘금융거래목적확인서’와 이를 증빙할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1일 이체한도를 제한한 ‘금융거래 한도제한계좌’로 발급하고 있다. 이를 해제하려면 재직증명서·사업자등록증·세금계산서 등 거래 목적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시행 초기에는 예금주가 3개월 이상 공과금 자동이체를 걸거나 신용카드 납부계좌로 등록하는 식으로 금융 거래 실적을 쌓으면 해제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제도 운영이 더 엄격해지면서 은행들이 이마저 허용하지 않거나 실적 기간을 12개월 이상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도계좌는 입출금통장 개설이 너무 쉬우면 보이스피싱, 대출 사기 등에 쓰이는 대포통장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금융 현장에서 지나치게 까다롭게 운영되다 보니 실수요자의 피해가 크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 민원이 계속되면서 지난해에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제도 개선을 권고하기도 했지만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거의 없다.



금융 당국은 “한도제한계좌 관련 구체적인 절차는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은행들의 입장은 다르다. 금융 당국의 감독·규제 구조상 은행은 한도제한계좌 위주로 보수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 현행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감독규정·시행세칙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반기별로 금융사의 사기이용계좌(대포통장) 발생 건수를 확인해 이 비율이 정해진 비율을 넘어서거나 발생건수와 피해환급액이 3개월 이상 늘어날 경우에는 해당 금융사에 제재를 가할 수 있다. 다만 이때 한도제한계좌에 대해서는 실제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대포통장 발생 건수에서 제외해준다. 은행으로서는 일단 한도제한계좌로 발급하는 것이 ‘안전한’ 방법인 셈이다.

A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과실이 없어도 사기이용계좌가 일정 이상 발생하면 금감원 제재를 받는 만큼 타이트하게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B은행 관계자는 “최근에는 신규 계좌보다는 기존 계좌를 악용한 보이스피싱 피해가 늘어나는 편”이라며 “반드시 한도계좌 때문에 금융사기 피해가 급격하게 줄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은행으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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