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예고됐던 택배노조 총파업 위기가 노사정 간 합의로 긴급 봉합됐지만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택배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부담하게 됐다. 파업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사실상 택배 요금을 인상하는 취지의 내용이 합의안에 들어갔다. 결과적으로는 여당은 노사 갈등을 중재한 것처럼 생색을 내면서 비용 부담을 국민들에게 떠넘기는 모양새가 됐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택배노조가 이날 공개한 ‘사회적 합의 이행 점검에 관한 합의문’에는 “택배 요금 및 택배비 거래 구조 개선을 가능한 5월 말까지 완료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CJ대한통운·롯데글로벌로지스·한진택배가 분류 인력 6,000명(각각 4,000명·1,000명·1,000명)을 다음 달 4일까지 투입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추가 인건비는 택배 요금 인상으로 충당하겠다는 뜻이다. 택배 노사가 민주당의 중재로 지난 21일 최초 체결한 합의문에는 택배비와 택배 요금 거래 구조 개선 방안을 올해 상반기에 마련하기로 했는데, 시점이 한 달 당겨졌다. 이행 점검 합의문이 택배노조 조합원 총회에서 가결되면서 이날 예정된 파업은 철회됐다.
분류 작업은 말 그대로 택배를 기사가 담당하는 지역에 맞게 분류하는 일을 뜻한다. CJ대한통운 등 택배사가 전국 단위의 택배를 대리점이 관리하는 지역(구 단위)으로 대분류해 보내면 대리점 차원에서 이를 기사가 관리하는 더 작은 지역(동 단위)으로 소분류해야 한다. 분류 작업은 이 소분류를 일컫는다. 원래 택배 기사가 분류와 배송을 도맡아했는데 물류량이 늘어나면서 분류 작업이 전체 업무 시간 중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노조는 이 분류 작업을 과로사를 조장하는 공짜 노동이라고 부르며 이를 위한 전담 인력을 채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제는 택배사, 대리점주, 택배 기사 모두 인건비 부담을 꺼리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근로계약 관계라면 택배사가 인건비를 모두 부담하겠지만 택배사와 대리점주, 택배 기사는 대등한 사업자로서 위수탁계약에 있다. 택배 기사는 운송량에 비례해 수당을 받아가고 택배사와 대리점주가 수수료를 떼어가는 구조에서는 한 주체가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할 수 없다. 각 이해 당사자가 부담을 거부한 결과 결국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셈이다.
실제로 다음 달까지 투입해야 할 분류 인력을 두고서도 택배사와 대리점주, 노조가 핑퐁 게임을 벌이고 있다. CJ대한통운의 경우 분류 인건비를 각 5 대 3 대 2로 분담하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사회적 협의 과정에서 기사는 비용을 내지 않기로 정리됐다. 결국 4,000명의 인건비는 택배사와 대리점주의 몫이 된 셈인데, 양측은 전날 비용 분담 방법을 놓고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꾸리기로만 합의했다. 결론을 내지 못하고 덮은 꼴이다. CJ대리점연합 관계자는 “CJ대한통운 측에서 택배 수수료에 일정 비용을 더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며 “주휴 수당, 4대 보험, 연장 근로 수당까지 모두 포함해 계산하면 30% 정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대리점 측은 4,000명의 인력 충원 계획은 택배사가 발표하고 근로계약은 대리점이 맺어야 하는 고용 방식도 문제라고 본다. 이에 대해 CJ대한통운 측은 “분류 인력에 지시를 내리는 주체는 대리점이 될 것”이라며 “택배사가 직접 고용하면 불법 파견 등 노동법 위반 문제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합의문의 ‘거래 구조 개선’은 사실상 수수료율 개편을 의미하는데 택배사·대리점주는 택배 기사에게 비용 부담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노조는 분류 작업의 분리를 ‘과로 구조의 개혁’으로 보기 때문에 다시 파업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택배 갈등이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셈이다.
/세종=변재현 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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