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헤지펀드와의 일차전에서 승리를 거둔 미국 개인 투자자들이 이번에는 ‘은’을 타깃으로 삼았다. 게임스톱 공매도에 베팅했던 멜빈 캐피털의 자산이 반 토막 나는 등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금속 시장까지 영향력을 넓힐지 주목된다.
31일(현지 시간)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개장 직후 은 선물은 8% 이상 상승하며 2013년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은 선물 외에 은광주인 쾨르 마이닝은 지난 1월 28일과 29일 각각 16.02%, 0.78% 상승했으며 같은 기간 팬아메리칸실버도 각각 11.24%, 3.77% 상승 마감했다. 은 가격을 추종하는 아이셰어즈 실버 트러스트 상장지수펀드(ETF)도 이 기간 각각 5.55%, 1.09% 상승했다.
은 선물과 관련한 주식이 이처럼 급등한 것은 최근 공매도 비중이 높은 게임스톱과 AMC엔터테인먼트 등을 총매집하면서 주가를 끌어올린 레딧의 월스트리트베츠 때문으로 보인다고 CNBC는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월스트리트베츠 이용자들이 최근 다른 주식을 급등시킨 것처럼 은에도 ‘쇼트 스퀴즈’를 실행하자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면서 은 가격이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은 가격을 인위적으로 억제하고 있는 대형 은행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트위터에서는 은을 쇼트스퀴즈에 빗댄 ‘실버스퀴즈’가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암호화폐 거래소 제미니의 공동 창업자인 카메론 윙클보스는 트위터를 통해 “실버스퀴즈의 파장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베츠 이용자들은 곧 은을 매수하며 실행에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29일 아이셰어즈 실버 트러스트에 유입된 자금이 약 10억 달러에 이른다고 전했다. 앞서 세계 최대의 귀금속 온라인 소매업체인 APMEX는 “실물 은 제품에 대한 전례 없는 수요 때문에 1월 29일 저녁 글로벌 시장이 개장할 때까지 추가 주문을 받을 수 없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다만 실제로 실버스퀴즈가 나타나며 은 가격이 추가 급등할지는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귀금속 거래 시장은 규모가 상당하기 때문에 개인 투자자들이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코메르츠방크의 애널리스트들은 FT에 “은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영향력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라보뱅크의 상품 스트래지스트인 라이언 피츠마우리스도 “레딧의 전략이 선물 시장, 특히 변덕스럽기로 악명 높은 상품 시장에서 얼마나 잘 통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베츠를 기반으로 한 미국 개인 투자자들은 현재까지 공매도 헤지펀드와의 전투에서 상당 부분 승리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WSJ에 따르면 1월 한 달 간 공매도 헤지펀드인 멜빈캐피털의 운용 자산은 53%나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 초 125억 달러에 달했던 멜빈캐피털의 운용 자산은 현재 약 80억 달러인데, 여기에는 지난달 25일 시타델 등으로부터 수혈받은 긴급 자금 27억 5,000만 달러도 포함됐다. WSJ는 지난 몇 년 간 월가의 최고 헤지펀드 중 하나로 자리를 잡은 멜빈캐피털이 게임스톱 공매도로 최근 몇 주간 큰 손해를 입었다고 전했다. 멜빈캐피털 외에 메이플레인도 1월 -45%의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연하 기자 yeo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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