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해 말 처음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 야권과 법조계는 “수사 경험이 부족하고 조직을 이끈 경험도 없다”는 비판이 강했다. 판사·변호사·헌법재판소 연구관을 거쳐 수사 경험이라고는 20년도 더 된 특검에서 2개월 특별수사관으로 근무한 것뿐이었다. 법조경력이 쌓이며 후배들은 많이 생겼지만 기관의 장을 맡아 본 경험도 없었다.
지난달 21일 취임한 김 처장의 임기 첫 보름 동안의 행보를 보면 그는 자신의 단점을 상쇄시키는 방법으로 주변 조언을 주요하게 참고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김 처장이 주요 결정 사안은 물론 작은 일들에 대해서도 주변 의견을 청취한다”는 평가가 있다. 앞으로 관건은 김 처장이 새로 들어올 검찰 출신의 공수처 검사들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는지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차장 단수제청 방침, 주변 법조인들 조언에서
공수처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수처 차장은 공수처법상 처장이 복수 또는 단수로 제청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이에 김 처장은 애초 대통령 임명권이 제청권보다 더 존중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복수로 차장 후보를 제청하고자 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의힘 등 야권에서 “복수 제청을 할 경우 대통령에게 전권을 사실상 주는 것이라 정치적 중립성을 저해시킨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 처장은 주변 여러 법조인들에게 의견을 구하기 시작했다.
김 처장에게 당시 조언했던 원로 법조인은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이 계속 논란인데, 대통령에게 차장을 선택하게 해주면 논란만 더 키운다”며 “중립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공수처법 취지에 비춰봐도 제청권이 더 중요하다. 차장 임명이 공수처장으로서 첫 공식 업무인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처장은 그 외에도 감사원장이 감사위원을 대통령에 제청할 때도 단수로 한다는 점을 참고했다고 한다. 감사원장은 감사위원 제청 시 청와대와 사전에 여러 후보에 대해 협의하고 최종적으로 인사검증을 거쳐 단수 제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 협의를 통해 대통령의 인사권을 보장하면서도 최종 형식은 단수 제청으로 한다는 것이다.
김 처장은 결과적으로 지난달 28일 차장 제청을 발표하는 브리핑에서 “복수로 제청할 방침을 정했지만 다수 의견에 따라 단수로 제청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찰 출신과 판사 출신 후보를 인사 검증에 올렸고, 최종 제청은 판사 출신 여운국 차장을 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처장이 수사 경험이 부족하니까 차장은 검찰 출신이어야 한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김 처장으로서는 검찰 출신을 차장으로 앉히기에는 여러 부담이 있다”며 “검찰개혁을 강조하는 현 정권에서 검찰 출신을 차장으로 할 경우 향후 여러 갈등과 리스크로 단점이 더 컸을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보면 김 처장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조언을 최대한 수용하되,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변 얘기가 있어도 밀고 나간다는 점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작은 의사결정도 의견 물어 '조율자' 자청"
김 처장은 최근 공식 외부일정을 줄이고 여운국 차장과 자주 점심을 하며 공수처 규칙 마련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21일 김 처장은 취임사를 발표했을 때도 주변에 ‘취임사가 국민 친화적으로 와 닿았는지’ 물었다는 후문도 있다.
검찰 출신 검사들 관리가 공수처 성패 가를듯
김 처장은 “공수처 검사에 지원한 인원 중 절반 정도가 검찰 출신”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공수처 검사에 총 233명이 지원했는데, 100명 정도가 검찰 출신인 셈이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처장과 차장 포함 25명의 검사 중 최대 12명을 선발할 수 있다. 김 처장은 12명을 채워 뽑겠다는 방침이다. 본인과 여 차장 모두 판사 출신으로, 수사 실무를 맡을 검사는 검찰 출신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공수처는 수사부 3개와 공소부 1개로 나뉘는데 수사부장 3명은 전부 검찰 출신으로 할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럴 경우 수사부장에는 차장검사 출신, 높으면 검사장 출신 변호사들이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관계자는 “차장검사, 검사장 정도의 전관 변호사면 수사 경험이 20년 안팎이고, 검찰 문화에 그만큼 익숙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들이 판사 출신의 김 처장을 얼마큼 신망할지는 사실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김 처장이 부하가 될 부장검사들을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셈이다.
검찰 출신의 공수처 검사들이 검찰과 내통할 수 있다는 점도 김 처장이 관리할 부분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사 잡겠다는 공수처인데 검찰 출신 변호사들이 공수처 검사가 돼 옛 친정의 선후배 검사들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과 척지기 싫어 공수처에 지원 안 한 검찰 출신 변호사들도 다수겠지만, 반대로 그런 결심을 하고 공수처 검사가 돼도 시간이 지나 결국 결심과 다르게 검찰과 내통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인기많은 공수처 자리..."능력자들도 다수 지원"
한편 공수처 검사에는 233명이, 수사관에는 293명이 지원했다. 검사는 23명, 수사관은 30명을 뽑는데 경쟁률이 10대1을 웃돈 것이다.
공수처 내에서는 지원 숫자가 많은 것은 물론 지원자들의 자질도 예상보다 뛰어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정농단 사건 특검 때 특별수사관으로 있었던 변호사가 검사직에 지원하는 등 유능한 인재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에 합격하려고 ‘전략 지원’을 한 현상이 있을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공수처 수사관의 경우 6급이 변호사 자격 보유자가 지원 요건 중 하나라 변호사들이 많이 지원할 것을 예상하고 경찰에서는 경위들이 오히려 7급으로 하향 지원하는 현상도 있다고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6급 수사관에 지원자가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자 293명 중 166명으로 절반이 넘는 인원이 6급에 지원한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로스쿨 출신 청년 변호사들 중에 수사 경험을 쌓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많이 몰렸을 것”이라며 “공수처 검사 임기 3년만 채워도 저연차 변호사로서는 ‘특별수사(특수) 경험자’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수처 검사는 기본 임기 3년에 두 번 연임할 수 있다.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공수처가 전관예우를 위한 수단이 되지 않도록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손구민기자 kmso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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