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입양 취소’ 관련 발언을 한 이후 학대 의심의 눈초리가 성실하게 아이들을 키워 온 입양 부모들로 향하고 있다. 공무원들이 아동 학대를 파악하겠다며 입양 가정에 방문을 요청하거나 유치원을 들쑤시자 입양 가정들은 혹여 입양 사실이 주위에 알려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문제가 된 대통령의 관련 발언이 나온 지난달 11일 이후 일부 지자체들은 입양 가정에 대면 조사를 요청하거나 유치원을 통해 입양 가정 내 학대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지자체마다 시행해오던 위기아동 발굴사업 대상에 입양 아동들을 새로 포함시킨 지자체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적지 않은 입양 가정들이 입양 아동이 상처를 입을 경우나 혹시 모를 불이익에 대비해 여전히 입양 여부를 주위에 알리지 않는다. 지자체의 무분별한 방문 조사 로 인해 혹시 원치 않은 아웃팅을 당하지는 않을까 이들이 불안해 하는 이유다.
게다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조사 방식이 입양실무매뉴얼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현행 매뉴얼에 따르면 입양 아동에 대한 대면 상담 등 사후 모니터링은 입양기관의 몫이다. 지자체는 입양기관을 감독함으로써 간접적으로만 개입할 수 있다. 대면 상담을 할 때도 기관과 동행해야 한다. 지난 10월 이후 학대 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겠다며 전담공무원이 배치됐지만 기본 절차조차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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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인천에서 세 아이를 입양해 키우고 있는 A씨는 최근 입양 가정 모니터링을 위해 구청 공무원이 입양 아동이 다니는 유치원에 일일이 전화를 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신과 달리 입양 사실을 유치원 등에 공개하지 않은 다른 양부모들이 걱정된 A씨는 구청 담당자에게 “그렇게 조사한다는 것은 유치원에 입양 사실을 알리겠다는 말씀이냐. 아이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따져물었다. 수화기 너머로는 ‘유치원에 입양 사실을 비공개하는 줄 몰랐다’는 황당한 답변이 되돌아왔다.
지난달 중하순 서울 성동구도 관내 입양 가정들을 방문해 조사하겠다는 공지를 내걸었다 입양 가정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성동구는 ‘정인이 사건’ 이후 자체적으로 지난 3년 치 자료를 분석해 학대 위험 아동을 분류했는데 여기에 입양 아동을 대거 포함한 것이다. 소식을 접한 양부모들이 조사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여기에 관련 전문가들까지 방문 조사가 매뉴얼에 맞지 않고 인권 침해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자 성동구는 결국 조사 방식을 바꾸겠다고 사과했다.
입양 가정들은 이 같은 ‘표적 조사’가 입양 가정을 향한 편견에 기댄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실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 한해 일어난 아동학대 사례 3만 45건 가운데 양부모에 의한 학대 사례는 전체의 0.3%(94건)다. 위탁모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입양 모 B씨는 “최근 사건으로 사회적 공분이 높지만 보통의 양부모들은 친부모들에 비해 결코 아이들에 쏟는 애정이 부족하지 않다”며 “실제 양부모들의 학대율이 높다면 인정하겠지만 실제로 어떤 객관적 근거도 없이 입양 가정이라는 이유로 조사 대상자가 되는 것은 모욕적이다”고 토로했다. 김지영 전국입양가족연대 사무국장은 “입양은 현재 민법, 입양특례법 두 경로를 통해 가능한데 흔히들 아는 입양특례법를 거쳐 입양한 부모들의 학대율은 친부모들에 비해서도 높지 않다”며 “기본적인 절차나 감수성이 결여된 공무원들의 최근 행태는 입양 가정에게 큰 상처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허진 기자 h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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