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7일 단행한 첫 검찰 고위 간부급 인사에서 교체가 거론되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유임되고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이 서울남부지검장에 전보됐다. 이른바 친정부 검사 ‘추미애 라인’으로 평가받던 검사들이 요직을 지킨 것이다.
반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시절 좌천된 윤석열 총장의 최측근 검사장인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인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번 인사는 윤 총장의 의중이 사실상 반영되지 않은 인사로 ‘추미애 시즌2’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법무부는 9일자로 검사장급 고위 간부 4명에 대한 전보 인사를 단행했다고 이날 밝혔다. 이번 인사는 박 장관이 지난 1일 취임 이후 실시한 첫 검찰 고위 간부급 인사로 주목받았다. 추 전 장관이 윤 총장과의 갈등으로 교체된 뒤 후임인 박 장관이 검찰과 어떤 관계를 형성할지 이번 인사를 통해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장관의 결정은 추 전 장관의 인사 기조를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었다. 일단 교체가 거론됐던 이 중앙지검장이 유임됐다. 이 중앙지검장은 이번 인사로 ‘채널A 사건’과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윤 총장 가족 사건 등에 대한 수사를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윤 총장은 앞서 2일과 5일 박 장관과 두 차례 만났을 때 이 중앙지검장에 대한 교체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박 장관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중앙지검장과 함께 추 라인으로 꼽히는 심 국장도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옮기며 사실상 영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남부지검은 ‘라임자산운용 정관계 로비 의혹 사건’을 담당하고 있어 향후 여당에 유리하게 수사를 이끌어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심 국장의 후임은 이정수 현 서울남부지검장이 맡는다. 공석이던 대검 기획조정부장 자리에는 조종태 춘천지검장이 전보됐다. 조 지검장 자리에는 김지용 서울고검 차장검사가 이동한다.
■윤석열과 협의했다더니…친정부·秋라인으로 '빅4' 돌려막기
법무부가 단행한 검사장급 인사에 대해 법조계 안팎에서는 윤 총장 ‘힘 빼기 완결판’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박 장관은 인사에 앞서 윤 총장과 두 차례 회동을 가졌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장과 대검찰청 반부패·형사부장 등 검찰 ‘빅4’에는 윤 총장과 수사·감사 등에서 각을 세운 ‘추미애 라인’이 그대로 유임됐다. 법무부 검찰국장이 바뀌었지만 이 역시 친(親)정부 검사를 ‘돌려막기’ 했다.
반면 1년 전 인사 때 좌천됐던 한 검사장 등 ‘친윤석열 라인’ 검사들의 일선 복귀는 무산됐다. 박 장관이 검찰청법 제34조 ‘검사의 임명 및 보직 등’의 원칙에 따라 윤 총장을 만나 의견을 들었지만 결국 ‘보여주기’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법무부 ‘조직 안정’이라는데 ‘秋 라인’은 그대로
박 장관 취임 이후 첫 검사장급 고위 검찰 인사를 놓고 이목이 집중된 것은 이 중앙지검장과 심 국장, 신성식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이종근 대검 형사부장 등 ‘추 라인’에 대한 인사 여부 때문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수사나 감찰 등의 과정에서 윤 총장과 대립각을 세운 인물이라는 점이다. 윤 총장이 박 장관에게 인사 교체를 요청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결과는 대거 유임이었다. 한때 교체설이 돌았던 이 서울중앙지검장은 자리를 지켰다. 신 부장, 이 부장도 유임됐다. 이로서 서울중앙지검의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옵티머스 펀드 사기 의혹 사건, 이용구 법무부 차관 택시 기사 폭행 사건,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은 계속 이 중앙지검장이 지휘하게 됐다.
추 전 장관 재임 시절 법무부 내 최측근으로 꼽힌 심 국장은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법무부 검찰국장 자리에는 박 장관의 고교 후배로 알려진 이정수 서울남부지검장이 발탁됐다. 이에 따라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기 사건과 검사 술 접대 로비 은폐·의혹 사건 등 수사 지휘는 심 국장의 몫이 됐다.
반면 한 검사장 등 윤 라인의 일선 복귀는 기약 없이 미뤄졌다. 법무부가 조직 안정, 검찰 개혁 과제의 흔들림 없는 추진 등 체제 정비 차원에서 전보 인사를 단행했다고 밝혔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추 라인 챙기기다’ ‘정권 수사 방패용’이라는 뒷말이 나온다.
◇후속 인사에 쏠리는 ‘눈’
관심은 앞으로 있을 차·부장 검사 등 인사다. 후속 인사의 방향성에 따라 검찰 내부에서 반발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전체적 인사 규모가 소폭에 머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박 장관이 검사장급 고위 검찰 인사에서 조직 안정을 키워드로 내세운 만큼 중간 간부 인사에서도 큰 변화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검찰 내부의 반발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점도 인사가 소폭에 그칠 것이라고 보는 배경 가운데 하나다.
다만 이 중앙지검장이 유임된 서울중앙지검의 경우 다소 변동 폭이 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 사태 와중에서 중앙지검 내부에서 반발이 나왔던 만큼 인사를 통해 대폭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이유다. 이른바 ‘친이성윤 라인’의 재건이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검언 유착 의혹 사건 등 각종 수사를 두고 이 지검장과 서울중앙지검 내 차·부장 사이의 충돌이 있었다고 알려졌다”며 “이 지검장이 지휘 권위를 잃었다는 말까지 돌 정도여서 본인 입맛에 맞는 차·부장검사들로 새로 진영을 구축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남은 시간은 5개월…식물총장 신세 윤석열
윤 총장의 임기가 5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현 정권이 최종 인사 카드로 힘 빼기에 돌입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검찰청법 34조의 2(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는 ‘법무부 장관이 제청할 검찰총장 후보자의 추천을 위해 법무부에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임명하기까지 ‘후보추천위 구성→추천→국회 인사 청문회’ 등의 절차를 완료해야 하는 만큼 2~3개월 전에는 인선 절차에 돌입한다. 윤 총장의 임기가 오는 7월까지라 후보추천위가 이르면 4월에 꾸려질 수 있다는 얘기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후보추천위가 구성된 후에는 검찰총장의 임기가 거의 끝났다고 본다”며 “4월께 후보추천위가 구성된다면 사실상 윤 총장이 실권을 잃는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고 분석했다. 윤 총장이 검찰 수장으로 수사 지휘 등에 나설 수 있는 기간이 실제 2개월가량 남았다는 뜻이다. 그는 이어 “이번 검찰 인사가 소폭으로 진행된다면 실질적인 검찰 인사 변화는 다음 인사로 봐야 한다”며 “검찰 내부에서도 지휘부 변화에 따라 새로운 줄 세우기가 시작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檢 인사, 휴일에 전격 발표…대검도 몰랐다
박 장관이 단행한 첫 검찰 고위 검사장급 인사에선 추 전 장관 때처럼 ‘윤석열 패싱’을 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법무부가 휴일인 이날 단행한 검사장급 인사는 대검찰청에 사전 통보 없이 이뤄졌다. 박 장관은 취임 후 두 차례에 걸쳐 윤 총장과 관련 회의를 했지만 인사 내용은 물론 발표 시점도 대검에 공지하지 않은 것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이날 인사 발표 내용과 시점을 대검에 사전 공지하지 않았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날 인사가 날지 예상하지 못했다”며 “법무부에서 사전 공지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법무부 발표에 대해 검찰의 수장인 윤 총장도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는데 내부에서 많이 당황스러워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다만 법무부는 인사 발표 직전 대검 측에 확정된 인사안을 전달하려 했지만, 대검 측은 이미 완성된 안을 받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총장 측은 법무부가 문서로 개별 인사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검사장 인사를 기습적으로 확정·발표한 것에 불만을 드러냈다. 법무부 측은 예고 없는 인사 발표에 대해 "인사가 늦어지는 것은 검찰 조직의 안정이라는 인사 취지를 해할 우려가 있어서 인사 시기를 앞당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 인사에서 윤 총장이 배제되는 상황이 또 다시 재연되면서 검찰 내부에서 반발 움직임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에는 윤 총장의 의중이 반영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지난해 1월 추 전 장관은 취임 직후 첫 인사를 단행하면서 윤 총장과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인사를 두고 추 전 장관과 윤 총장의 불협화음은 이어졌다.
이와 달리 박 장관은 취임 후 지난 2일과 5일 두 차례에 걸쳐 윤 총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또 ‘보여주기식 아니냐’는 외부의 지적에 “형식적으로 하지 않겠다”고도 밝혔다. 이에 윤 총장은 박 장관을 만나 자리에서 이 중앙지검장의 교체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박 장관은 윤 총장의 핵심적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검장 교체땐 자칫 '수사 방해' 시그널…정권 수사 지휘부는 유임
박 장관이 단행한 첫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포인트는 현 정권 관련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장들이 대거 유임됐다는 것이다. ‘월성 원전 1호기 수사’를 지휘하는 이두봉 대전지검장과 ‘김학의 불법 출국 금지 사건’을 맡은 문홍성 수원지검장이 유임됐다.
이는 이 중앙지검장을 유임시키는 명분을 지키면서 검찰 내부의 반발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인사에서도 ‘패싱’ 당한 윤 총장은 기존 수사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정권 견제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박 장관이 이 지검장과 문 지검장을 교체하지 않은 것은 우선 ‘업무의 연속성’이라는 명분으로 이 중앙지검장을 유임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중앙지검장을 유임시킨 채 다른 지검장들만 교체한다면 ‘수사 방해’ 의도로 읽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이들 지검장을 유임시킨 것은 검찰의 의견을 존중하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앞서 윤 총장은 박 장관과의 만남에서 이 지검장을 유임해달라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월성 원전 수사의 경우 현 단계에서 지검장 교체는 실익이 없다고 계산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대전지검은 최근 청와대 행정관을 조사하는 등 수사를 상당히 진척시킨 상황이다. 만일 수사를 지휘하는 지검장이 교체돼 기존의 결과와 다른 방향으로 바뀌면 수사 라인에 있는 검사들의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검찰의 6대 중대 범죄 수사를 수사청으로 이관하는 작업에 불똥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번 인사가 정권 수사를 훼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수사청 신설은 검찰의 권력 수사를 완전히 봉쇄하기 위한 수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오는 6월까지 수사청 분리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성윤과 이두봉 등을 동시에 유임함으로써 정권 수사 지휘에 관해서는 검사들이 비판·반발할 여지를 없앴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에서 별다른 실익을 거두지 못한 윤 총장이 정권 관련 수사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부여된 권한을 십분 행사할지 관심이다. 월성 원전 수사는 8일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본격적인 청와대 연루 수사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학의 사건의 경우 이 중앙지검장의 연루 의혹 규명에 힘쓸 것으로 예상된다.
/이경운 기자 cloud@sedaily.com, 안현덕 기자 always@sedaily.com,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 손구민 기자 kmso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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