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무자본 인수합병(M&A)에 사채자금을 빌려주고 수십억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한 사채업자가 자본시장법 위반의 단독범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이 불법 M&A에 가담한 사채업자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의 공범이 아닌 단독범으로 인정한 것은 이번 사건이 처음이다.
8일 서울남부지검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한규현 권순열 송민경 부장판사)은 지난달 28일 사채업자 서 모(51)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벌금 35억원, 추징금 70억원을 선고했다. 서씨는 지난 2016년 A조합이 코스닥에 상장된 디스플레이 제작 업체 B사를 무자본 M&A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자금이 무자본 M&A에 쓰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40억 원을 A조합에 빌려준 것으로 조사됐다. 사채자금을 빌려준 후 서씨는 그 담보로 B사의 주식을 취득했고 주가가 상승하자 주식을 몰래 매각해 70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검찰은 서씨가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것이라 보고 지난 2018년 9월 그를 구속 기소했다.
이번 선고는 무자본 M&A에 가담한 사채업자가 자본시장법 위반의 '단독범'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사례다. 당초 검찰은 1심에서 서씨를 A조합 집행부 두 명과 함께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공범'으로 보고 기소했다. 지난 2019년 7월 있었던 1심 선고에서 서씨는 징역 2년 6개월, 벌금 70억원, 추징금 7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검찰은 항소심에서 공소장을 변경해 서씨를 자본시장법 위반의 단독범으로 가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서씨가 무자본 M&A 세력의 범행에 편승해 단독으로 사기적 부정거래 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그동안 대부분의 무자본 M&A 사건에서 자금 제공자인 사채업자는 처벌을 피하거나 상대적으로 경미한 처벌을 받아 왔다.
한편 서씨와 함께 기소된 A조합의 대표조합원 정 모(63)씨와 업무집행조합원 박 모(66)씨는 항소심에서 모두 징역 4년에 벌금 2억 5,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2016년 3월 B사에 대한 무자본 M&A 과정에서 B사 주식 인수대금을 외부 투자 및 서씨의 사채로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금을 조합의 '자기자금'으로 허위 공시함으로써 주가를 부양해 B사 경영권을 취득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를 받는다. 박씨는 금융감독원 부원장 출신이다.
검찰은 "서씨의 판결 확정 후 추징 보전된 재산을 통해 부당이득 70억 원을 모두 환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태영 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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