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는 ‘간질’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주인공 덕선이(혜리)의 짝인 반장(권은수)이 갑자기 간질 증세로 거품을 물며 발작하는 장면인데요. 발작이 시작되나 덕선이는 곧장 응급처치를 하고, 밖에서 볼 수 없도록 친구들로 하여금 교실의 문을 닫게 합니다. 반장의 엄마가 미리 덕선이에게 반 친구들 몰래 귀띔해 준 덕분이죠.
이후 반장은 양호실에서 친구들이 자신의 병을 알게 될까 걱정하며 눈물을 흘리는데요, 오히려 교실에 돌아오니 친구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평소처럼 반장을 대합니다. 이 모든 게 반장의 엄마가 덕선이에게 부탁한 응급 상황에 대한 대처법이었고, 덕선이는 미션을 훌륭하게 수행해 냅니다.
뇌전증을 향한 편견들
학창시절 저 역시 ‘간질’이라 불리는 질환을 앓는 친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친구가 갑자기 팔다리가 굳어지고 경련을 일으키는 상황에 어린 저희들은 깜짝 놀란 게 사실입니다. 성인이 되어서야 그 간질이 사실은 뇌전증이라는 질환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간질이라는 단어가 주는 편견 때문에 이름까지 뇌전증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또 뇌전증이라는 게 뚜렷한 원인은 없으며 연령에 따라 유전, 교통사고로 인한 뇌손상, 미숙아, 분만 중 뇌손상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죠. 그 당시 반 친구를 향해 저도 모르게 갖고 있던 편견에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뇌전증은 소아, 미성년자 뿐 아니라 노인에게도 올 수 있는 신경계 질환입니다. 인종, 연령, 국가, 지역에 관계 없이 발생하며 국내에서 뇌전증 진료 인원은 2018년 기준 29만7,600명에 달합니다. 뇌질환 중에는 치매, 뇌졸중 다음으로 많은 숫자입니다. 나폴레옹, 알렉산더대왕, 도스토예프스키, 단테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더와 문호도 뇌전증을 앓았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질환인 셈입니다. 하지만 어린 자녀에게 갑자기 발작이 발생하면 부모는 놀라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세상의 편견 때문에 숨기기에 급급할 수 있습니다. 지난 8일은 세계 뇌전증의 날이었는데요, 오늘은 한국뇌전증협회와 대한뇌전증학회의 자료 등을 참고해 소아 뇌전증에 대처해야 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주무르고 따고’ 민간요법 무용지물…약물치료만이 경련 해법
소아뇌전증은 성인과 다르게 변화가 심합니다. 어른보다 빨리 심해지고 빨리 낫습니다. 경련은 거의 1~2분 내에 멈추기 때문에 아이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지만 경련 시 호흡이 자유롭지 못하고 근육 강직이 나타나기 때문에 숨쉬는 것을 도와줘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덕선이가 반장에게 했듯 꼭 끼는 옷은 느슨하게 해 주고, 입 안에 분비물이 증가하거나 토할 수 있으니 고개를 옆으로 돌려주는 식의 응급 대응이 필요합니다. 간혹 어르신들은 손발을 바늘로 따거나 주무르기도 하는데요, 전문가에 따르면 이런 민간요법으로는 경련이 멈추지 않는다고 합니다. 경련을 멈추는 방법은 약물 치료가 유일합니다.
또한 경련이 5분 이상 지속될 경우에는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합니다. 민간요법에 의존하느라 시간을 지연하면 아이에게 뇌 손상이 올 수도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우선 항경련제를 처방합니다. 환자의 70~80%는 한 가지 항견련제로 약 2~3년 간 치료하고 약물을 중단합니다. 경련의 종류에 따라 항견련제가 다르고 부작용 등도 다르기 때문에 전문가의 복약지도를 잘 따르는 게 중요합니다. 물론 임의로 중단해서도 안 됩니다. 소아의 약물 대사량은 대개 12세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나이가 들면서 줄어듭니다. 어른보다 12세 소아의 약물 대사량이 높습니다. 대사량이 높으니 약물이 쉽게 몸에서 빠져나갑니다. 같은 몸무게라도 소아가 성인보다 많은 약이 필요한 셈입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의 경우 약물에 대한 부작용 우려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약제의 부작용이 많이 개선됐으며 의심 시에는 의사와 상의해 약제를 변경하거나 감량할 수 있습니다. 다만, 2년 이상을 치료해도 조절되지 않는 경우는 ‘난치성 뇌전증’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뇌전증 사실 숨기지 말아요
사실 뇌전증은 사회적 편견이 많은 질환입니다. 또 발작 증상이 나타날 때 환자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전해 듣고 상처받는 경우도 많이 생깁니다. 대한뇌전증학회에서는 이런 이유로 무조건 숨기거나 거짓을 말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하는 게 긍정적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학교, 단체 생활을 일부러 피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부모 입장에서는 미리 학교 선생님께 응급처치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등의 방식으로 증상이 발생하면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놓는 게 좋겠죠.
처방대로 항경련제를 꾸준히 복용하고 2년 이상 경련이 없다면 서서히 감량해 약을 끊을 수 있습니다. 그 전까지 중요한 건 규칙적인 수면과 보호자 ‘마인드 컨트롤’입니다. 갑자기 잠을 줄이거나 불규칙한 수면 습관은 경련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기사는 대한뇌전증학회와 한국뇌전증협회의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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