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은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 연구자들과 관계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진행한 5년간의 보존 처리 작업이 지난달 완료되면서 본래 모습을 찾았다. 지광국사탑의 화려한 조각은 고려 시대 탑 중 가히 최고라 할 만하다.
승탑과 함께 조성된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또한 고려 시대 탑비 중 으뜸으로 꼽힌다. 1085년에 건립돼 천 년의 세월 속에 많이 훼손됐지만 탑비의 장엄함과 위엄은 두 손을 모으게 한다. 탑비의 조각은 세필로 그린 것처럼 섬세하고 아름답다. 양 측면의 쌍룡문, 비신 상부에 새겨진 변상도 같은 도상은 보면 볼수록 감탄을 자아낸다.
이처럼 웅장하고 화려한 탑과 비의 주인인 지광국사 해린은 984년 원주에서 태어났다. 고려의 여타 국사·왕사가 왕족 출신이거나 중국 유학을 다녀온 것과 달리 지광국사는 중소 호족 출신에 유학을 하지 않았음에도 현종의 원찰인 현화사 주지를 맡았고 문종의 왕사가 됐으며 고려의 국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의 위상은 탑비에 새겨진 법호에서 드러난다. 고려 승려의 법호는 사상과 업적을 국가로부터 공인받는 의미인데 지광국사는 여덟 차례 법호를 받았고, 무려 34글자에 달한다. 이는 역대 고승들의 금석문에 보이는 법호 중 가장 긴 편에 속한다.
탑비에 새겨진 행적에 따르면 지광국사는 현화사 주지를 하면서 대장경 판각을 총괄했다. 고려가 송나라에서 간행한 대장경을 입수한 것은 991년 성종 때지만 대장경 간행은 현종 때 시작돼 문종이 역점적으로 추진했다. 바로 이 시기에 현화사 주지이자 문종의 왕사, 고려의 국사였던 지광국사를 당시 상황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니 그의 탑과 비가 여타 국사·왕사의 탑비보다 정교하고 화려하게 조각된 궁금증이 조금 풀리는 듯하다. 그와 동시대를 살면서 수많은 대장경 판을 판각·간행했던 각수와 각공들의 누적된 기술과 기법이 석조 예술로 승화된 덕이라고 본다. /이종숙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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