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의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063170)이 국내 근현대 및 고미술과 해외 작품 등 총 193점 약 120억원 규모의 작품을 앞세운 올해 첫 메이저경매 ‘159회 미술품 경매’를 23일 강남구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개최한다.
가장 주목해야 할 작품은 단원 김홍도와 함께 도화서에서 활동했던 고송유수관 이인문(1745~1821)의 산수화 8폭 병풍인 ‘산정일장’이다. ‘산정일장’은 낮잠 자고, 차 마시고, 책을 읽는 소박한 선비의 평화로운 일상에 대한 시(詩)를 소재삼아 그림으로 옮긴 시의도(詩意圖)다. 도화서 화원 중에서 실력자만 규장각 소속으로 따로 뽑는 자비대령화원 시험 주제에 등장할 정도로 중요한 주제여서 여러 화가들이 그렸지만, 이인문이 특히 이 분야의 대표 화가로 꼽힌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간송미술관 등에 이인문의 ‘산정일장’이 소장돼 있으나 이번 출품작은 현전하는 것들 중 최대 크기이고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시작가는 20억원으로 이번 경매의 최고가 출품작이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10억원 이상 고가 작품의 거래가 위축된 상황에서도 미국에서 50여년 만에 환수된 ‘요지연도’ 병풍이 20억원에 낙찰되는 등 희소성 높고 검증된 작품의 경우 수요가 있고, 특히 소장품 구입 예산이 안정적인 박물관 등의 확보 의지가 적극적인 점 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의 필치는 섬세하고 맑은 채색은 이상향의 분위기를 절묘하게 형성한다. 경기도박물관 등지에서 전시를 통해 선보인 적 있는 작품이다.
출품작 프리뷰(사전 전시)가 한창인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가장 관람객이 많이 머무는 곳은 지난 달 타계한 ‘물방울 화가’ 김창열의 시기별 대표작들 앞이다. 평안남도 맹산 출신으로 해방 후 서울대 미술대학에 입학한 김창열은 전쟁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잠시 경찰생활을 하다 박서보·정창섭 등과 함께 전후 실존의식을 격정적으로 표현한 앵포르멜 미술운동을 펼쳤다. 1960년대 미국을 거쳐 파리로 간 김창열은 1972년 처음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해 물방울과 스민 흔적을 달리 배치하고, 신문이나 문자 위에 물방울을 얹는 등 다양한 변주로 시기별 특색을 구축했다.
수많은 물방울이 간격을 두고 영롱하게 달려 있는 1977년작 ‘물방울’(161.5×115.7㎝)은 추정가 4억8,000만~7억원으로 경매에 오른다. 폭이 약 3m에 이르는 1986년작 ‘물방울’(이하 추정가 2억8,000만~4억원)은 눈물처럼 일렁이는 물방울들이 아련하게 맺혔다. 앵포르멜 추상에서 물방울로 변화하는 과도기 작품인 1968년작 ‘무제’(2억~3억원)는 물방울처럼 동그랗지만 눈송이처럼 하얀 원으로 가득 찬 작품이다. 프랑스 신문 르몽드 위에 물방울을 올려 시대상과의 소통을 꾀한 작품(1,400만~2,500만원)을 비롯해 1,000만원대 종이작품부터 1억원대 캔버스의 물방울까지 다양하다.
박수근의 1950년대 작품으로 알려진 10.5×23.5㎝ 크기의 ‘노상의 사람들’이 시작가 5억5,000만원에 출품됐다. 화강암 같은 거친 질감으로, 가난하지만 소박하고 따뜻한 사람들을 그린 박수근의 대표적 소재는 잎 떨어진 나목과 아낙들이다. 전쟁 징집 직후의 사회상 탓인지 그림에 남성이 등장하는 사례가 적은 편인데, 이 작품은 길가에 앉은 6명의 남성들을 그리고 있다. 곰방대로 담배도 피우고 담소도 나누는 사람들이 제각각의 자세로 공들여 그려졌다.
한국미술 최고가 거래 기록을 보유한 김환기의 작품은 유난히 화사한 색감을 자랑하는 1960년대 중후반 뉴욕 시기 작품이 3점이나 나왔다. 파란 바탕에 빨강·노랑·초록이 색종이 가루처럼 뿌려진 1967년작 ‘무제’(10억~20억원)를 비롯해 고운 분홍빛 배경에 산월을 그린 1966년작 ‘무제’(2억5,000만~4억), 십자 구도로 색감과 번짐효과가 탁월한 1969년작 ‘14-Ⅶ-69 #87’(2억~3억원)이 새 주인을 찾는다.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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