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진행된 북한 비핵화에 대한 담판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난 지 2년이 지났다. 당시 미국은 비핵화 최종 단계를 비롯한 큰 그림의 합의를 요구했지만 북한은 영변 핵 시설과 대북 제재 해제의 맞교환을 고집하면서 합의는 불발됐다. 하노이 노딜로 인해 북핵 문제는 문재인 정권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끄는 새로운 정부가 등장함에 따라 ‘톱다운’ 방식에 의한 북핵 해결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을 비롯한 바이든 정부의 관계자들은 벌써부터 ‘새로운 전략’을 언급하고 나섰다. 제대로 된 실무 협상 없이 이벤트식 정상회담으로 북핵을 해결하는 것은 어렵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도 전략을 바꿔야 한다. 북핵 해결의 가장 큰 동력인 미국이 정책 방향을 트는데 우리만 기존 노선을 고집하면 문제만 더 꼬이게 할 뿐이다.
걱정스러운 대목은 우리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에 올인하는 정책을 수정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가 외교·안보라인을 교체하면서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외교부 장관으로 내세운 것만 봐도 그렇다. 지난 4년간 대북 정책의 키맨 역할을 한 사람을 외교부 수장으로 임명했다는 것은 ‘우리민족끼리’에 방점을 둔 기존 정책을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뜻이라고 봐야 한다. 정 장관은 이미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이런 생각을 피력한 바 있다. 정 장관은 북한이 개성에 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까지 폭파한 상황에도 “한반도에서 평화가 일상화됐다”고 주장했다. 우리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총살을 당하고 시신이 불태워졌는데도 “남북 합의 정신에 위배된 것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혹시라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심기를 건드릴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스탠스가 미국과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정 장관은 이미 미국 측 카운터 파트너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상당한 시각차를 노출한 바 있다. 블링컨 장관이 수차례에 걸쳐 새로운 대북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밝혔으나 정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를 분명히 약속했다”며 북한을 두둔하기도 했다. 양국의 생각이 다른 건 한미 연합 군사훈련도 마찬가지다. 정 장관은 연합 훈련에 대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지만 미국 국방부는 “(연합 훈련이) 도발적이지 않다”며 즉각 반박했다.
우리 정부가 비핵화를 할 마음이 없는 북한을 감싸면 감쌀수록 바이든 행정부와의 갈등만 깊어진다. 이제라도 정부가 현실을 직시하고 냉정하게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정부는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핵 관련 합의서가 나왔지만 결국 무산된 배경을 되돌아봐야 한다. 북한은 핵 협상을 할 때마다 총론에는 합의를 하는 척하면서도 각론에 모호함을 남겨두는 방법을 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싱가포르 선언에도 남아 있다. 북한은 싱가포르 선언에서 ‘북한 비핵화’ 대신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문구를 관철시켰다. 이는 한반도에서의 미군 철군과 괌에 배치된 전술핵 철거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그동안 북한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내용이다. 한심한 것은 우리 국방백서에까지 ‘한반도 비핵화’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러니 미국에서 “북한의 도발보다 동맹 비협조가 더 문제”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문재인 정부의 북한 비핵화 노력은 완전히 실패했다. 우리 정부가 평화 체제 운운하면서 북한 눈치를 보는 사이에 북한은 핵 개발에 이어 핵탄두의 소형화 단계에 진입했다. 이에 대처하려면 공포의 균형을 맞추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바람직한 것은 자체 개발이지만 여건상 이게 여의치 않다면 미국의 핵우산이라도 빌려와야 한다. 마침 국제사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아시아에서 나토식 핵기획그룹 창설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활용해 안보 불안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청와대부터 북한 대변인 노릇을 그만두고 미국과 정책 공조에 나서야 할 때다.
/오철수 cs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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