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는 매년 세계 여러 나라 국민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조사를 진행한다. ‘나는 한 나라의 국민이기보다 세계 시민이다’라는 문장에 얼마나 동의하는지를 알아보는 설문이다. 2016년 처음 조사 대상이 된 나라들에서는 응답자의 절반이 자신을 세계 시민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나의 삶은 특정 지역에 얽매여 있지 않다’는 인식 또는 바람의 기저에는 ‘세계화’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노동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효율적인 생산과 분배 △빈곤율·문맹 감소 △인간 삶의 개선 같은 이미지로 형성되는 단어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세계화가 불러온 불평등과 환경 파괴 같은 부작용이 이미 수많은 서적과 기사 등을 통해 지적돼 왔다. 신간 ‘리볼트(Revolt)’는 이 이야기를 좀 더 직접적으로, 적나라하게 전달한다. 세계화의 풍요 바로 옆에서 그 대가를 온몸으로 치르고 있는 현장을 소개하며 전 세계가 맞닥뜨린 위기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기자인 저자는 20년에 걸쳐 세계화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추적해 왔다. 그가 주목하는 개념은 ‘착취 허브’다. 유럽과 미국 기업들은 오랜 기간 노동력과 에너지, 원자재를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는 빈곤국에 공장을 지었다. 이득은 취하되 환경 파괴와 노동력 착취라는 ‘폐해’는 고스란히 그 지역에 머무는 불합리한 구조를 저자는 착취 허브라고 칭한다.
과거 중국에 수많은 국가의 해외 기지가 들어서고 ‘세계의 공장’이란 수식어가 생겨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비롯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착취 허브가 무한 복제·확장된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심각한 공장 매연과 오염물질로 인한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쉽고 편한 길’을 택했다. 강대국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화력 발전소의 절반을 베이징 밖 가난한 시골 마을로 옮기고,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공장 상당수를 방글라데시와 베트남 등지로 이전했다. 저자는 “전 세계의 경각심이 커지고 지역의 자율권이 강화되면서 착취 허브의 수명은 줄어들고 있고, 신속하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고 진단한다. 착취의 주체인 기업과 국가 기관들이 ‘폐해를 의식하지 못하거나 저항하지 못할 정도로 취약한 지역’을 필사적으로 찾아 나서는 허브의 복제가 가속화한다는 이야기다.
저출산 문제를 세계화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관점도 흥미롭다. 일본은 ‘사람들이 아이 낳는 일을 잊었을 뿐 아니라 죽는 일도 잊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한 나라다. 저자는 “세계화와 더불어 중국의 제조업과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일본 기업이 효율성을 높여야 했다”며 이 과정에서 기업들의 로비로 채용과 해고 기준이 완화됐다고 설명한다. 실제 지난 25년 간 일본 내 정규직 노동자 수는 4,300만 명 줄어든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1,200만 명 늘었다. 근로 조건이 열악해지자 연애, 결혼, 출산은 먼 세상 이야기가 됐다. 여기에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사회 복귀가 어렵다는 현실까지 더해져 일본 젊은이들의 출산 기피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일본을 넘어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이 문제는 “분열된 세계 질서에 대한 반발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다만 저자는 ‘지금의 세계화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단언하면서도 근본주의, 반유대주의, 인종적 민족주의, 신러다이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급진적인 반세계화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이들은 ‘세계화된 세계에 대한 불만’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뿐, 정당한 저항으로 시작된 반 세계화 운동을 인류의 진보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변질시킨다고 지적한다. 특정 단체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는 ‘세계화에 대한 불만을 이용해 북부의 쇠락한 공업 지대(러스트밸트)를 공략하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민자 수용과 국제무역 효과는 배제한 채 이들 탓에 중산층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민심을 자극한 것이다. 생계 문제에 직면했던 이들의 저항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지만, 이 저항은 그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 채 씁쓸한 결말로 끝을 맺었음을 지난해 미국 대선이 보여줬다.
책은 세계화에 대한 저항(Rovolt)의 에너지를 개혁으로 끌어들일 것을 주문하면서 “이전 시대에 지어진 집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을 더 살만한 공간으로 개조하는 것”을 우리의 목표로 제시한다. ‘하나의 정치 사상으로서 세계화는 정체성과 지역성, 전통주의를 파괴하지 말고 오히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대명제다. 저자는 세계화 때문에 강제로 붕괴할 위험에 처한 공동체에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누진 소비세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세금을 부과하고 부유한 도시민에게 연대세를 걷어 그 돈으로 농촌의 기반 시설 투자를 늘릴 것을 주장한다. 아울러 세계적인 세제 개혁(조세 불평등 해소), 이민·난민 수용 등을 제안한다.
진단이나 대안에 대한 찬반을 떠나 무역 분쟁과 난민, 테러, 환경오염, 저출산, 극단주의, 포퓰리즘, 탈진실 등 세계화와 관련된 꼼꼼한 취재와 분석이 인상적이다. 2만1,000원.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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