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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외칼럼] 민주당이 체득한 ‘학습 효과’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오바마 경기부양책 반쪽성공 그친건

부채 공포·통합 대한 잘못된 믿음 탓

절차 얽매인 소심한 정책은 도움 안돼

미래 위해 '올바른 과감함' 보여줄 때

폴 크루그먼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인 십수 년 전 필자는 대공황에 가까운 경기 침체를 수습하겠다며 대통령 당선인이 제시한 경제 부양안이 확실한 성과를 내기에 미흡하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당시 오바마는 ‘개혁적인 인물’로 인식됐지만 필자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그의 경제정책에 ‘오바마의 한계’라는 딱지를 붙여줬다.

안타깝게도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그의 경제정책이 경기 침체를 어느 정도 완화하기는 했지만 확실한 회복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이로 인해 중요한 추가 조치들을 보다 과감하게 밀고 나갈 동력을 상실했다.

다행히 민주당은 그때의 쓰린 경험을 통해 귀중한 교훈을 터득한 듯 보인다. 그들은 오바마의 경기 부양책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미국 경제 회생안의 의회 통과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낼 것이다. 사실 조 바이든의 경기 부양책은 민주당 성향의 일부 경제 전문가들조차 인플레이션 위험을 거론할 정도로 규모가 방대하다. 하지만 그들의 견해에 동의하기 힘들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의 말을 빌리자면 소심한 조치에 동반되는 위험은 과감한 정책에 의한 경기 과열 위험을 압도한다.

궁금한 점은 민주당이 어떻게 이처럼 대담해졌느냐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학습 효과’다. 민주당은 지난 2009년 이후 경제와 정치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터득했다.

한때 오바마를 비롯한 상당수 민주당 의원들은 공공 부채야말로 미국 경제를 위협하는 심각한 도전이라는 공화당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수용했다. 재정 적자가 미국이 직면한 ‘실존적 위협’이라는 폴 라이언 하원의장의 경고도 받아들였다. 그러나 재정 파탄 전망은 번번이 빗나갔고 이제는 주류에 속한 경제학자들도 국가 부채에 관해 이전보다 훨씬 유연한 자세를 취한다.

2009년 이후 민주당은 경제적 현실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보다 정치적 현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학습했다. 오바마는 양당 협력이 가능하며 공화당이 경제 위기를 타개하려는 그의 노력에 협력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첫 임기를 시작했다. 공화당의 반대에도 오바마는 부채에 관한 초당적 대타협을 꾸준히 추진했다. 한마디로 그는 지나치게 순진했다.



많은 진보주의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일성으로 ‘통합’을 강조하자 그가 오바마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바이든과 민주당 의원들은 공화당이 협력하지 않을 경우 단독으로 대규모 경제 회생안을 처리할 준비가 돼 있는 듯 보인다.

민주당에 고무적인 것은 바이든의 정책들이 여론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든이 내놓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구제안은 2009년 경기 침체를 해소하기 위해 오바마가 제시했던 경기 부양책보다 훨씬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의회에서 공화당의 지지를 단 한 표도 얻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공화당이 극단주의로 치우쳤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뿐 바이든 측이 협치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이든과 민주당이 체득한 학습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권 출범 직후 처음 몇 달 사이에 유권자들에게 가시적인 혜택을 안겨주지 못하면 결국 국정 운영의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귀중한 교훈을 터득했다. 대규모 구제안이 추후 기반 시설 프로젝트나 기후변화 같은 정책들을 추진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한 가지 더 있다. 민주당은 유권자들이 절차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알아챈 듯 보인다. 이른바 ‘트럼프 감세안’의 의회 처리 과정에서 공화당 상원이 필리버스터를 피해 가는 절차법을 이용해 민주당의 반대를 뿌리친 채 과반수 찬반 표결을 강행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유권자는 거의 없다. 지금 민주당도 상원에서 이와 동일한 수법을 구사하고 있지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올바른 정책 입안이 2009년에 비해 2021년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민주당이 깨달았다고 믿는다. 단지 경제 상황 때문만이 아니다.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의사당 난입을 묵인하며 음모론자들의 의회 진출을 두 손 벌려 환영하는 의원들이 대거 포진한 야당에 변변치 못한 정책을 들이댈 경우 향후 선거에서 그들의 기세를 부추기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채는 국가의 미래에 결코 실존적 위협이 될 수 없다. 진정한 실존적 위협은 유럽의 극단적인 극우주의 세력에 더 가까워 보이는 진보적 공화당(liberal GOP)이다. 그런 정당의 미래에 힘을 실어줄 함량 미달의 부실한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일인지 민주당이 확실히 깨달은 것 같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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