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전자 제품과 첨단 군사 무기 등에 광범하게 쓰이는 핵심 소재인 희토류의 생산을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희토류를 무기화해 미국에 맞설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하며 미국에 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 19일(현지 시간) 중국 공업정보화부와 천연자원부는 올해 상반기 희토류 생산량을 8만 4,000톤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시기 생산량인 6만 6,000톤에서 약 27% 증가한 수준이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생산국으로 공업정보화부와 천연자원부는 1년에 두 번 희토류 생산 업체 6곳에 생산량을 설정한다. 이같이 희토류 생산을 엄격히 통제해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대한 우려가 예전부터 제기돼왔다.
이번 발표는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화해 미국에 맞서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보도가 잇따르는 가운데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16일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며 중국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국가나 기업에 희토류 정제 기술을 수출하는 것을 제한할 수 있다고 전한 바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중국이 미국의 첨단 무기 생산을 방해하기 위해 희토류의 수출을 제한하는 카드를 고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번 발표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행보로 해석하고 있다. SCMP는 중국의 희토류 생산량 확대 소식을 전하며 “중국이 미국에 화해의 손길을 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왕융 베이징대 국제경제학 교수 역시 “중국이 서방, 특히 미국에 희토류를 무기로 삼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희토류 쿼터 도입후 최대 생산 예상
中 전문가 "바이든 정부 화답해야"
美, 동맹 손잡고 中 압박 차질 전망
G7 코로나·기후 공동대응 약속 속
獨·佛 등 '전략적 자율성' 강조
美 우선주의 종식여부에 의구심
중국이 희토류 생산량을 늘리며 ‘희토류 무기화’에 대한 우려는 일단락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요7개국(G7)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다자 외교 무대에 진출하는 시점에 맞물린 이번 발표는 미국과의 갈등 수위를 낮추려는 중국의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지난 19일(현지 시간) 중국 공업정보화부와 천연자원부는 ‘2021년 1차 희토류 채굴 및 제련 쿼터 설정 관련 통지’를 발표해 올해 상반기 희토류 채굴량을 8만 4,000톤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27% 늘어난 수준이다. 희토류 제련 규모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5% 늘어난 8만 1,000톤으로 설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런던 소재 시장조사 업체인 로스킬의 희토류 전문가 데이비드 메리맨은 중국에 희토류 쿼터제가 도입된 후 가장 많은 생산량이라고 평가했다.
이로써 최근 잇달아 제기됐던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대한 우려는 일단 불식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국가나 기업에 희토류 정제 기술을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며 희토류 무기화 우려에 불을 지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익명의 내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중국 정부가 F-35 전투기 등 미국 전략물자의 핵심 원료가 되는 희토류 17종의 생산과 수출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실제로 미국은 중국의 이 같은 움직임에 발맞춰 ‘희토류 자립’을 위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이달 2일 로이터통신은 미 국방부가 전날 텍사스주 남부 공업지대에 희토류 처리 가공 시설을 짓기 위해 호주 희토류 업체 리나스에 3,040만 달러(약 336억 원)를 투자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7월에 이어 또다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이는 생산부터 가공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미국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해 중국에 의존하는 것을 줄이겠다는 의지로 풀이됐다. 미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미국은 희토류 수요의 8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이 희토류 자립을 위한 구체적인 행보에 나설 정도로 희토류를 둘러싼 미중 사이의 긴장감이 고조된 가운데 나온 중국의 이번 발표는 미국을 향한 중국의 화해의 손길로 평가되고 있다. 왕융 베이징대 국제경제학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의 이 같은 선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양국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전했다.
특히 이번 발표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다자 외교 무대에 등장한 시점에 나와 더욱 주목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유럽 등 전통 우방국과 손을 잡고 중국의 세력 확대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G7 정상회의와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안보 포럼인 뮌헨안보회의(MSC)에 참석해 대중 강경 기조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는 중국이 국제경제 시스템의 토대를 악화시킨다며 미국과 유럽이 손잡고 중국에 함께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유럽 국가들은 안보 분야에서 미국과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특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안보에 있어 미국의 의존을 줄여야 한다며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나토가 조금 더 정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나토에서 유럽의 개입을 확대하는 최선의 방법은 각국이 안보를 더 책임지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NYT)는 “유럽이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기술 자립을 추진하는 것처럼 안보 독립에 대한 목표도 세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미국과 독일의) 이익이 완전히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미국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독일과 러시아의 가스관 연결 사업을 미국이 반대하는 것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유럽 내에서 중국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유럽 국가가 대중 관계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습이다. EU 통계 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은 미국을 따돌리고 EU 최대 교역국으로 올라섰다. 또 최근 양국이 투자 협정을 체결하고 비준 작업을 진행 중인만큼 중국과 미국과의 유럽 교역액 격차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압박에 유럽이 무조건 협조하기는 어려운 배경 중 하나다. 이를 두고 폴리티코는 “유럽이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중 관계를 두고 바이든 대통령의 셈법이 복잡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리하이둥 중국 외교학원 국제관계연구소 교수는 21일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각국은 외교정책을 수립할 때 그들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 고려할 것”이라며 “중국과 유럽의 거대한 경제 및 무역 관계 외에도 미국 국내 정치의 심각한 혼란이 미국 우방국들의 신뢰를 심각하게 떨어뜨렸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유럽을 설득해 반중 노선을 공고히 하려는 노력이 실패했다는 의미다.
/곽윤아 기자 o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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