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22일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를 정지 또는 취소하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를 살인, 성폭력 범죄 옹호로 몰아가는 분위기에 유감을 표명하고 여론전에 나섰다.
김대하 의협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22일 “의료계 내부에서도 살인이나 성폭력 범죄 등을 저지른 일부 의사 때문에 전체 의사의 명예가 손상되는 것을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며 “의료법 개정안 전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며 일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국회와 의료계가 충분한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아나가자”고 제안했다.
◇의협 “성폭력 의사 등 면허취소 찬성…억울한 면허취소 막으려는 것"
김해영·이재희 의협 법제이사(변호사)는 “여당이 아무런 의견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의료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가장 큰 문제점은 교통사고 같은 과실범죄, 범죄의 종류와 상관없이 금고형 선고유예만 받아도 면허가 취소돼 억울한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또 “기본적 인권 옹호, 사회정의 실현이 사명인 변호사의 위법행위와 국민보건 향상, 건강한 생활 확보가 사명인 의사의 의료와 무관한 위법행위는 같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 근거로 변호사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2019년 합헌 결정을 들었다. 앞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서도 다뤘고 위원들도 법안 심의 때 논의한 내용이다.
헌재는 의사·약사·관세사와 달리 변호사에 대해서는 직무와 무관한 범죄를 결격사유에 포함시키고 금고 이상의 형 집행유예기간 종료 후 2년이 지나지 않으면 변호사가 될 수 없도록 한 변호사법 조항이 평등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위헌심판청구에 대해 합헌 결정했다.
헌재는 “(의료법·약사법·관세사법이 의사·약사·관세사의 의무를 직무영역과 관련된 범위로 제한하고 있는 것과 달리)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고 법률사무 전반에 대해 독점적 지위를 가지므로 법률사무의 전문성·공정성·신뢰성 확보를 위해 변호사법에서 품위유지, 공익활동, 독직행위금지 등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며 “이런 차별취급은 합리성·형평에 반하는 자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또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사람의 변호사 활동을 영원히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집행유예기간+2년’ 동안만 금지, 윤리의식을 제고하려는 것이므로 보호하고자 하는 공익이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사람이 직업을 선택할 수 없는 불이익보다 크다”고 봤다.
하지만 보건복지위 위원, 특히 법안 발의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판단은 달랐다. 보건복지위가 통과시킨 의료법 개정안 대안은 강병원·강선우·권칠승·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4개 법안을 통합·조정한 대안이다. 의료인 면허취소 사유 범죄행위에 성폭력범죄·특정 강력범죄만 추가한 법안도 있었지만 결국 모든 금고 이상의 형으로 확대하는 대안을 채택했다.
◇복지부는 “법사위 결정으로 총파업 없을 것” “국회 소관” 거리두기
대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개정 법 시행 후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유예·집행유예 받은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은 각각 선고유예기간, ‘집행유예기간+2년’ 동안, 형이 집행된 의료인은 집행종료 후 5년 동안 취소된 면허를 재교부받지 못한다. 또 금고 이상의 형으로 2차 면허취소 땐 10년 동안 재교부 금지, ‘1차 면허취소+재교부’에 이어 자격정지 사유 행위 땐 면허취소(현행대로 최장 3년)라는 제재를 받게 된다. 변호사·법무사·공인회계사 등의 면허취소 사유와 같다. 다만 의료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해 위험한 수술 등을 하다가 환자가 상해를 입거나 사망해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의료인은 면허취소 대상에서 제외된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들은 어떨까. 보건복지위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나라마다 다르다.
일본에서는 의사법 등에 따라 의료관련 범죄는 물론 형사범죄로 벌금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료인은 면허취소된다. 반면 독일은 직무관련성을 중시한다. 의료과실로 인한 상해, 사기, 성범죄, 문서위조, 조세 포탈 등의 범죄에 한해 직무 관련성을 인정하고 보험금 과다청구로 인한 벌금형 등은 관련성을 인정하는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는 공중보건법에 의한 면허취소와 형법상의 범죄로 형벌을 선고받은 경우 직업활동 금지명령에 따른 면허취소가 가능한데 범죄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다. 미국은 형사범죄를 의사 면허취소 사유로 규정하고 있으나 주(州)마다 차이가 있다. 테네시주에서는 형사범죄, 성범죄자, 낙태 시술 위반, 부정직한 의료광고, 비전문적·비윤리적·부정직한 행위, 의료실무에서의 중과실, 습관적 만취, 약물 오남용 의사 등이 면허취소 대상이다. 메인주에서는 1년 이상 징역·금고형, 성범죄나 면허 거래 등의 범죄는 1년 미만 징역·금고형을 선고받은 의료인을 면허정지·취소할 수 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논의 과정 이후에 생길 수 있는 의료계 상황에 대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대응하겠다"면서도 “이번 의료법 개정관련 사항은 국회 소관”이라며 거리를 뒀다.
이창준 보건의료정책관은 이날 "(25일 예정된) 법사위 결정만으로 의협에서 총파업하는 상황은 생기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의료법 개정안이 대다수 의료인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상황을 계속 설명하고 여러 의견을 수렴해 문제가 될 사항이 있는지 계속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의협의 자율징계권에 대해서는 "아직 의사면허 관리는 정부가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게 사회적 여론"이라며 "의료계의 자율 징계권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지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임웅재 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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