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비폭력 신념을 이유로 입영·예비군훈련 등 병역의무 이행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대법원 판결에서 유·무죄가 갈렸다. '진정한 양심'의 유무, 당사자들의 전과·병역거부 시도 등 과거 행적의 일관성이 재판부 판단의 주요 기준이었다.
25일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비폭력 신념을 이유로 예비군 훈련을 16차례에 걸쳐 거부해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는 '여호와의 증인' 등 종교가 아니라 개인적인 신념을 예비군 훈련 거부 사유로 인정한 첫 번째 판례다. 대법원은 앞서 지난달 28일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예비군훈련 거부를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반면 대법원은 무죄 판결을 받은 A씨와 비슷하게 비폭력주의 신념을 내세워 입영을 거부한 B·C씨에 대해 이날 상고를 기각하고 유죄를 선고한 1·2심 판결을 확정했다.
◇ 병역거부에 진실성·일관성 여부가 중요
관건은 과거 행적에서 드러나는 진실성과 일관성이었다. A씨는 어린 시절 폭력적인 성향의 아버지를 보며 비폭력주의 신념을 가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미군의 민간인 학살 동영상을 본 후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전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애초에 병역을 거부하려 했으나 어머니와 친지들의 설득에 못 이겨 군입대를 했고, 군사훈련을 피할 수 있는 화학 관리 보직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제대한 뒤에는 더는 양심을 속이지 않겠다고 결심, 예비군 훈련을 모두 거부한 끝에 14차례 고발돼 재판을 받았다. 이로 인해 A씨는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일용직이나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해왔다.
대법원은 이 같은 일관된 과거 행적을 토대로 A씨의 병역거부가 예비군법과 병역법에서 규정하는 병역 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 폭행 전과 있거나 진실성 없으면 유죄
반면 1·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B씨는 2015년 모 단체가 개최한 집회에 참가해 경찰관을 가방으로 내리쳐 폭행한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과가 있었다. 또 당시 수사기관에서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 시민들이 총을 든 것을 폭력행위라고 비판할 수는 없으며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총을 들었을 수도 있다'는 취지로 말한 점 등도 2심에서 유죄 판단이 내려진 근거가 됐다. 상황에 따라 전쟁·물리력 행사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 것이다. 이는 B씨가 병역거부 사유로 내세운 '비폭력 신념'의 진실성을 의심케 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시민단체 활동가 C씨의 판결에서는 진실성이 쟁점이 됐다. C씨가 병역거부 이전에는 반전·평화 관련 활동을 하지 않은 점,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면서 발표한 소견서에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은 B·C씨의 상고에 대해서는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판단해 기각했다.
◇ 종교적·비종교적 병역거부 판단 잣대 동일
대법원은 종교적 이유로 입영이나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사건의 경우에도 당사자가 해당 종교활동에 충실히 참여했는지, 비폭력적 교리를 지켜왔는지 등 과거 행적을 감안해 판단해왔다. 지난해 7월에는 여호와의 증인에 입교하는 '침례의식'을 거치지 않은 상태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남성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파기환송심 판결을 재차 파기하기도 했다.
9년간 종교활동을 하지 않다가 입영 통보를 받자 성서 연구를 시작하며 입영을 거부한 남성도 7차례 형사처벌을 받은 전적과 평소 총기 게임을 즐긴 점 등이 밝혀져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박신원 인턴기자 shin0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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