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하루 동안 부산 곳곳을 누빈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4·7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대통령의 선거 유세’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여당 지도부까지 대동하면서 야당으로 기울어진 ‘부산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다. 청와대는 부산·울산·경남의 ‘동남권 메가시티’ 추진을 위한 ‘소통 행보’라며 확대해석에 선을 긋고 있지만 ‘정치 행보’라는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부산 부전역에 이어 가덕도신공항 예정지, 부산신항을 둘러본 후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의 신속한 국회 통과를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15년간 지체돼온 동남권신공항 사업부터 시작하겠다”며 “묵은 숙원이 하루라도 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조속한 입법을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낙연 대표의 ‘2030년 이전 완공’ 발언을 의식한 듯 “오는 2030년 이전에 완공시키려면 속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부산 및 가덕도 방문은 여당이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덕도신공항특별법 처리를 공언한 가운데 여당을 지원 사격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현장에는 민주당의 이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 등 지도부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도 함께했다.
문 대통령이 가덕도신공항 예정지를 방문한 것은 대통령 당선 이후 처음이다. 취임 후 처음인 가덕도신공항 부지 방문의 시점이 ‘왜 하필 지금이었나’라는 비판이 따라붙는 이유다. 특히 야권은 부산 보궐선거를 앞두고 수세에 몰린 여당을 지원하기 위해 문 대통령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한 검토에 착수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누가 봐도 대통령의 도 넘은 선거 개입”이라며 “선거 개입을 중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한 검토에 들어갈 것”이라며 “노골적 선거 개입은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 울산시장인 같은 당 김기현 의원도 날을 세웠다. 김 의원은 “대통령이 부산에 간 것은 (여당 후보가) 야당 후보를 이기기 어려울 것 같으니 대놓고 ‘관권 선거’ ‘선거 개입’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청와대와 여당의 불법 공작 선거 습성이 또 발동했다. 3년 전 울산시장 선거 공작 때와 판박이처럼 닮았다”고 비꼬았다. 문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송철호 현 울산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언급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재판을 받고 있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송 시장 등이 동행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주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이번 일정은 드루킹 대선 여론 조작 의혹으로 2심에서 실형 유죄를 선고받은 김 지사, ‘울산 선거’로 재판받고 있는 송 시장 등 피고인들과 같이하는 아주 볼썽사나운 일정”이라고 쏘아붙였다.
청와대는 야당의 공세를 일축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온 한국판 뉴딜 현장 방문의 일환일 뿐이라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오래전부터 기획한 지역 균형 뉴딜 일정”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이날 부산 및 가덕도 방문은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이뤄진 데다 가덕도신공항특별법 제정에 대한 정부 부처의 반대 입장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 큰 논란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정의당도 비판에 가세할 정도다. 강은미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가덕도신공항에 대해 “사업성은 물론이고 환경에 끼치는 영향마저 무시하며 추진하는 토건 사업이 MB 정권의 4대강과 다를 게 무엇이냐”며 “선거를 위해, 표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생각은 대국민 사기에 가깝다”고 문 대통령과 민주당을 몰아붙였다.
앞서 국토부는 이달 초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가덕도신공항 건설에 소요되는 비용이 부산시가 밝힌 7조 원대보다 4배 많은 28조 원 이상이며 환경 피해가 막대하다는 등 각종 문제점을 제기한 바 있다. 정부는 국토부의 문제 제기 이후 조율된 의견을 수립했다지만 국토부 보고서는 가덕도신공항의 각종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문 대통령도 이날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국토부의 전향적 태도를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사업 방향이 바뀌어 국토부 실무진의 곤혹스러움이 있을 것이다. 그 곤혹스러움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국토부가 의지를 갖지 못하면, 원활한 사업 진행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김해신공항 확장으로 결론 난 것이 가덕도신공항 건설로 방향이 틀어진 데 대해 실무 부처의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한 것이다. 가덕도신공항 추진에 대해 ‘절차상 하자가 있는 직무 수행을 거부하지 않을 경우 직무 유기에 해당한다’는 법률 검토까지 한 국토부를 질책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변 장관은 “일부 언론에서 마치 국토부가 가덕도신공항을 반대한 것처럼 비쳐 송구하다”면서 "현재 국토교통위 심의 과정에서 사전타당성조사 시행이 반영되는 등 관계 기관 이견이 해소됐다. 내일 법안이 통과되면 가덕도신공항 추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해 국토부 내부 이견 제기를 묵살했다.
/허세민 기자 semin@sedaily.com, 임지훈 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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