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보기술(IT) 거물들이 4일 개막하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시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과의 기술 패권 전쟁에서 ‘테크 굴기’를 떠받치고 있는 대들보이자 미국 등 서구권으로 사업을 확장해야 하는 글로벌 기업가이기도 하다. 양회의 메시지에 충실하면서도 공산당과의 밀착 행보로 미국을 자극해서는 안 되는 어려운 과제가 주어진 셈이라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모인다.
2일(현지 시간) ‘중국판 포브스’로 불리는 후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중국 최고 부호였던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의 재산(557억 달러, 약 62조 5,455억 원) 순위가 4위까지 떨어졌다. 사실 마윈의 추락은 예상됐던 일이다. 지난해 10월 마윈 회장이 “혁신을 방해한다”며 중국 금융 당국을 공개 비판한 뒤 다음 달로 예정됐던 자회사 앤트그룹의 상하이·홍콩 증시 동시 상장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마윈이 공산당 눈 밖에 나면서 알리바바의 기술 혁신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같은 알리바바의 현실은 중국 빅테크에도 부담이다. 이번 양회에서는 기술 자립이 핵심 의제로 꼽힌다. 그런 만큼 중국 IT 거물에게 힘이 실릴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중국 당국은 지난해 11월부터 주요 빅테크 기업을 세무조사 등으로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실제 지난달에는 텐센트의 한 임원이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텐센트 측은 개인 비리일 뿐이라는 입장이지만 공산당이 수가 틀리면 기업을 손볼 것이라는 우려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때문에 일단 빅테크 업계는 예년처럼 양회에서 공산당에 충성도 높은 태도를 취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전인대 대표인 마화텅 텐센트 회장, 레이쥔 샤오미 회장, 리옌훙 바이두 회장은 올해도 공산당과 손발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지난해 양회에서 중국 정부의 ‘신형 인프라 구축’ 제안에 인공지능(AI)과 위성 인터넷을 이용한 국가 발전 로드맵을 제시한 바 있다. 쑨신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는 “기술 기업 대표들은 마윈으로부터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며 “최소한 공개석상에서 정부 감시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속내는 복잡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자신의 기업과 공산당 간 연계를 밀착 감시하는 미국 규제 당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올 1월 안보를 명분으로 중저가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샤오미는 반발했지만 공산당과의 밀착 행보가 미국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레이쥔 회장의 전인대 대표 임기는 오는 2022년까지로 1년 더 남아 있다. 미국과의 ‘오해(?)’를 풀어야 할 샤오미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특히 이들 기업의 주력 사업이 기술 패권 다툼의 중심이 되는 미래 기술 분야인 점도 중국 IT 거물의 고민을 키우는 요인이다. 샤오미의 경우 스마트폰에서 사물인터넷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고 올 1월 전기자동차 산업 진출을 공식화한 바이두는 AI 반도체 분야에 뛰어들었다. 샤오멍 루 유라시아그룹 애널리스트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를 통해 “중국 기술 총수들은 세계가 자신들을 중국 공산당의 연장선으로 보는 게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면서 “앞으로 이들은 전 세계 소비자들 앞에서 독립적인 플레이어로 자신을 묘사하는 것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곽윤아 기자 o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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