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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레임덕은 운명이다

임기말 대통령-당정청 엇박자 속출

가덕도 방문으로 국민 불신만 키워

'메멘토모리' 새겨 권력도취 말기를

뺏는 정치 접고 주는 정치로 돌아와야





예전에 다큐멘터리에서 본 유치원의 ‘사탕 모으기’ 게임이 생각났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아이에게 사탕을 주거나 뺏을 권한을 줘서 한쪽이 먼저 주면 다른 한쪽도 주고, 뺏으면 뺏는 식으로 진행되는 게임이었다. 흥미롭게도 게임 전 ‘죽음’ 이야기를 들은 경우에는 ‘주는 선택’을,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뺏는 선택’을 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응수하는 ‘팃포탯’ 게임에서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의 협력 효과가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죽음은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정치권력도 끝은 있다. 임기 5년의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권 말 레임덕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청와대와 여당, 행정부에서 계속되는 혼선이 그 징후다. 청와대에서는 신현수 민정수석의 사표 여진이 길어지고 있다. 검찰 인사를 두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갈등이 있었다지만 생중계하듯 잡음을 노출시키더니 사표 반려에도 사의를 접지 않는 신 수석이다. 그런데도 그를 어쩌지 못하고 있으니, 문 대통령은 스타일을 많이 구겼다.

여당에서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문제에서 대통령의 말발이 안 선다. 문 대통령은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이 정착되기도 전에 중수청을 설치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취지의 속도 조절 메시지를 박 장관을 통해 전달했음에도 여당 내 강경론은 요지부동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황운하 의원은 “검찰이 수사권을 갖는 한 검찰 개혁은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고 했고 정청래 의원은 “대통령의 임기는 1년 남았고 21대 국회 임기는 1년 됐다”며 중수청 입법화 의지를 불태웠다. 여기에 조국·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들까지 수사·기소권 분리 목소리를 높이면서 속도조절론을 꺼낸 문 대통령이 민망하게 됐다.



행정부의 뒤탈 걱정 또한 전형적인 레임덕 징후다. 오는 4월 보선을 앞두고 정권 차원에서 밀어붙이는 가덕도신공항특별법과 관련해 국토교통부·기획재정부·법무부 등이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할 수 있는 특혜 조항 등을 지적하며 부정적 의견을 드러냈다. 특히 국토부는 절차상 문제가 있는 특별법에 반대하지 않는 것은 직무 유기에 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국회에 전달했다. 관료들은 현 정권의 탈원전 정책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이 구속된 것을 똑똑히 봤다. 임기 말 뒤탈 염려에는 정권의 탓이 크다. 그런데도 레임덕을 대하는 자세는 안이하다. 부산시장 보궐선거 열기가 한창 달아오르고 있는 시점에 가덕도를 찾은 문 대통령은 “가슴이 뛴다”고까지 했다. 이 얘기를 접하고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가슴이 내려앉았다”는데, 아마도 많은 국민이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로마의 전쟁 영웅이었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개선 행진 때마다 노예로 하여금 자신의 귀에 ‘메멘토 모리’를 속삭이게 했다. 권력자인 자신도 죽음은 피할 수 없음을 늘 기억하면서 권력에 취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한 것이었다. 문 대통령도 10년 전 저서 ‘운명’에서 권력기관 개혁을 언급하면서 “권력에 취하면 소신도 잊어버리기 십상인 것이 사람이다”라고 갈파했을 정도로 경망하기 짝이 없는 권력자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다.

정권 4년 차의 문 대통령은 그동안 권력에 얼마나 도취됐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권력의 유한함을 애써 잊고 움켜쥐려고만 하면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뿐이다. 가덕도 방문만 해도 부산 민심을 여당에 유리하게 돌리기는커녕 가덕도신공항에 대한 국민적 반감과 정권에 대한 불신만 키우는 결과를 낳지 않았나. 여당의 중수청 설치 강행도 국론만 갈라놓고 권력기관 개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급기야 윤석열 검찰총장이 연이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중수청 설치를 반발하면서 “국민은 ‘○○○’가 아니”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더 이상은 국민이 이런 식으로 지칭되는 일이 없도록 문 대통령은 뺏는 정치가 아닌 주는 정치로 돌아와야 한다. 메멘토 모리를 마음속 깊이 새기지 않으면 안 된다. hnsj@sedaily.com

/문성진 hns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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