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에서 시작된 학교 폭력 폭로 움직임이 연예인 등 사회 전반으로 일파만파 퍼지는 가운데 정부 산하 단체가 만든 ‘학교 폭력 예방법’이 도마 위에 올랐다. ‘비싼 물건이나 돈 자랑하지 않기’ ‘호신술 익히기’ ‘부모와 함께 등·하교하기’ 등 현실과 동떨어진 방법을 예방법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는 ‘기대보다 처벌 수위가 낮을 수 있다’며 학폭 피해자에게 경찰 신고를 만류하는 듯한 문구도 포함돼 논란이 예상된다.
4일 정부가 위탁 운영 중인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에는 이 같은 내용이 학폭 예방법으로 소개돼 있다. 이 예방법은 청소년 문제 해결을 통합 지원하고 총괄하는 기관인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이 제작해 배포한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친구 사귀기를 적극적으로 하기 △비싼 물건은 집에 놓고 다니고 소지품이나 돈을 자랑하지 않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호신술을 익히고 호루라기 등 호신용 도구를 지니고 다니기 △인적이 드문 길은 피하거나 여러 명의 친구와 함께 다니기 등 담겨 있다. 또 학교 폭력 대처 방법으로는 △당장 이길 수 있어도 폭력은 더 큰 싸움을 불러올 수 있으니 절대 맞서 싸우지 않기 △일단 그 자리를 피하고 보호자에게 연락하기 △등·하교 방법 바꾸고 친구나 부모와 동행하기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를 본 학생들은 현실을 모르는 조치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고교 1학년인 이지현 양은 “예방법을 만들기 전에 한 번이라도 학교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는지 궁금할 정도”라며 “등·하굣길에 엄마와 동행하면 더 왕따당한다”고 지적했다. 고교 2학년 김창현 군도 “공부하기도 바쁜데 무슨 호신술이냐”며 “현실을 모르고 만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초등학교 6학년 여혜린 양은 “보통 4학년 때부터 왕따나 괴롭힘이 많은데 학교에서 돈 자랑을 해서 괴롭힘을 당하는 애들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밖에도 ‘호신술을 익힌다고 학폭이 해결되지 않는다’ ‘학폭 책임을 피해자한테 다 떠넘기고 있는 것 같다’는 학생들 반응이 잇따랐다.
개발원이 제시한 학폭 예방법에는 피해자의 경찰 신고를 주저하게 만드는 내용도 포함돼 또 다른 논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예방법에는 ‘경찰에 신고할 경우 경찰 개입이 시작되면 학교에서의 중재는 불가능해진다. 가해자가 재범이 아니면 법적 처벌 수위가 낮아 피해자가 기대하는 처벌을 받기도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자칫 경찰 신고까지 생각하고 있던 학폭 피해자에게는 신고를 고심하게 만들 수 있는 대목이다. 해당 문구에 대해 한 학생은 “학폭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없던 일로 하거나 빨리 처리해버리려는 것처럼 무책임해 보인다”고 말했다.
예방법을 제작·배포한 개발원 측은 “예전에 만들어진 ‘올드’한 자료라 시기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나 수준에서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과거 자료를 업데이트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고 해명했다. 해당 예방법이 지난 2012년에 만들어진 만큼 지금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어 개발원 측은 “지적대로 학폭 예방법이 올바르게 올라가 있는 것 같지 않다”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부분을 조사해 보완·수정하겠다”고 밝혔다.
/방진혁 기자 bready@sedaily.com, 김성원 기자 melody12147@sedaily.com, 정혜진 기자 suns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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