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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담] 文 쏙 뺀 北, 이인영 때리는 美에 길 잃은 운전자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김정은 위인전', 文 거명 최소화..."핵에는 핵으로"

美에선 "이인영, 김정은 사악함 탓하라" 비판 쏟아져

"韓, 북한에 지나치게 관대...정치적 활용할까 우려"

"北 경제난, 제재 아닌 본인 탓" 유럽도 李장관 반박

통일부 "제재 평가하잔 뜻" 해명에도 남북미 냉기류

3월 한미군사훈련은 결국 축소 실시...北 반응 관건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 더불어민주당이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남북 관계 개선의 불씨를 되살리려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정작 북미 대화의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은 여전히 이에 호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우리 정부를 철저히 무시하는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고, 미국 정가 안팎에서는 연일 문 대통령과 이인영 장관의 대북 전략에 반발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 미중 갈등 등 외부 변수까지 고려하면 당분간 우리 정부의 대북 전략은 한반도 주변국들의 무관심 속에 ‘마이웨이’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의 경우 중단이나 연기는 아니지만 축소 실시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간 줄기차게 훈련 중단을 요구해 온 북한이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식으로 반응할 지도 향후 북미·남북관계에 큰 관건이 됐다.

지난 4일 북한 제1차 시·군당 책임비서 강습회 회의가 열린 모습. /연합뉴스


文대통령 이름 언급 최소화한 ‘김정은 위인전’...“핵에는 핵으로”

지난달 28일 외교가에서는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위인과 강국시대’라는 제목의 도서가 이목을 끌었다. 사실상 ‘김정은 위인전’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평양출판사가 총 620여 쪽, 7개 챕터로 구성해 지난해 12월30일 발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10년 간의 국방·외교·경제·사회·문화 분야 성과를 담았다.

책은 김정은의 대외관계 성과를 서술하면서 첫 손에 북미관계를 꼽았다. 2018년 사상 첫 싱가포르 정상회담과 판문점 회동에만 15쪽을 할애하며 지대한 업적으로 자화자찬했다. 다만 ‘노딜’로 끝난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은 일절 다루지 않았다.

대남관계에 있어서는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내용은 ‘9월 평양공동선언’이라는 표현으로만 소개하고 구체적인 설명은 피했다.

특히 이 과정들을 주도한 문 대통령의 이름은 해당 부분에서 거의 거론하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문선명 통일교 총재 등의 이름과 일화를 직접 거론한 것과는 대비되는 대목이었다. 최근 냉랭해진 남북관계가 반영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뒤따랐다. 문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한 건 “김 위원장의 파격적 면모가 극적으로 드러난 때는 사전 계획에도 없었던 문재인 대통령을 이끌고 북측 땅으로 넘어서는 장면이었다”는 딱 한 줄 뿐이었다.

책은 핵무력 강화 의지도 강조했다. ‘핵에는 핵으로’라는 소제목을 단 글을 통해 2016년 수소탄 실험과 이듬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장착용 수소탄 실험을 상세히 설명했다. 또 ICBM '화성-14형'과 '화성-15형' 발사 시험도 나열했다. “적대 세력들과는 오직 힘으로, 폭제의 핵에는 정의의 핵 억제력으로만이 통할 수 있다” “강위력한 핵 무력으로 미국의 일방적인 핵 위협의 역사를 끝장내야 한다”는 게 김정은의 신조라는 설명도 있었다. 이 책은 또 “군사적 긴장 상태의 지속을 끝장내는 것이야말로 북남(남북)관계의 개선과 조선(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며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남한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바라는 평화의 요건과는 거리가 먼 발언들이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이인영, 김정은의 사악함 탓하라”…美서 쏟아지는 비판

이런 가운데 미국 정가에서는 북한 제재의 성과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이인영 장관의 발언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이 장관에 대한 미국 정가의 불만은 그 전에도 종종 있어 왔지만 최근 들어 그 비판 수위가 훨씬 더 높아진 분위기다.

이 장관은 지난달 26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5년 간 강한 제재가 이뤄졌고, 이제는 제재가 성공적인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지 아닌지 살펴볼 때가 됐다”며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한 예외를 확대하거나 보다 큰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국무부는 같은 날 이를 즉각 반박했다. 미국 국무부는 “제재로 북한 주민의 삶이 어려워졌다”는 이인영 장관의 발언에 동의하느냐는 미국 국영방송 미국의소리(VOA)의 질문에 “북한인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유는 제재 때문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정책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북한은 국제 항공과 운송에 대한 국경 폐쇄를 비롯해 극도로 엄격한 코로나19 대응 조치를 시행해 왔다”며 “이런 엄중한 조치들은 인도주의 기관과 유엔 기구들, 다른 나라들의 노력을 크게 저해해 왔다”고 지적했다.

VOA는 이달 2일에도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구체화되기도 전에 한국 통일부가 ‘제재 재검토’를 거듭 요구하는 데 대해 워싱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는 소식을 전했다. 북한의 인도주의적 위기는 김정은 정권의 잘못된 정책에서 비롯됐다며 이인영 장관은 제재를 탓할 게 아니라 북한 정권에 문제를 제기하라는 촉구가 이어지고 있다는 보도였다. VOA는 북한의 위협에 공동 대처해야 할 동맹국이 오히려 미국과 대북제재를 ‘악의 근원’으로 선전하는 북한의 주장을 옹호하고 있다며 미국의 기조와 다른 대북제재와 규제 완화를 연일 촉구하는 것은 한미 간 이견을 부각시키고 북한만 이롭게 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이 장관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제재를 해제하고 김정은 정권의 어떤 악의적 행동과 불법 행위를 공개적으로 용납하려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이 장관은 북한 주민들에게 미치는 제재의 영향을 재검토하는 대신 김정은의 정책이 주민들의 고통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도록 주문해야 한다. 한반도의 모든 문제는 김씨 정권의 사악한 본질과 압제 시스템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어떤 제재도 인도적 지원이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차단하지 않는다”며 “북한의 현 경제 위기는 제재 때문이 아니라 형편없는 경제 계획과 관리 상의 무능함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또 “코로나19로 인한 자체적 고립과 봉쇄, 흉작과 악천후, 국경 차단에 따라 붕괴된 북중 무역 등도 북한 주민을 어렵게 만들었다”며 “이 역시 모두 북한 정권이 자초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지난해 10월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공개한 미 본토를 겨냥할 수 있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연합뉴스


“주민 식량난에도 핵 개발…韓, 북한에 지나치게 관대”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도 이날 VOA에 “주민들이 식량난을 겪는 와중에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등 군비 확충에 수십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는 당사자는 바로 북한”이라며 “북한인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한, 김정은의 정책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브루스 벡톨 앤젤로주립대 교수는 “통일부든 누구든 조사 결과 북한의 영양실조 실태를 파악했다면 그런 상황은 5년 전, 15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1992년 이래 지속된 북한의 영양실조 문제는 앞으로도 제재와 관계없이 계속될 것이고 이는 군부와 엘리트들이 주민들을 차단한 채 모든 부를 독차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정부로부터 많은 자금을 공여받은 유엔과 비정부기구의 대북지원이 최고조에 달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지원은 일반 주민이 아닌 군부와 엘리트, 평양의 고급 아파트 건설, 최신식 무기 시스템 구입에 사용됐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며 “제재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은 늘 그렇게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주민을 고통에 빠뜨린 장본인은 김정은”이라며 “김정은의 셀프 제재 국경 봉쇄, 무역 차단, 최근 당 대회에서 자인한 끔찍한 경제 부실 운영, 희소한 재원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전용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비판했다.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모든 중요한 정책 문제와 관련해 심지어 자국민의 시민적 자유를 희생해가며 김정은의 이익을 옹호하는 문재인 정부의 경향을 고려할 때 미국이 한국을 동맹으로서, 그리고 수만 명의 미군과 미군 가족들의 안전한 주둔국으로서 신뢰할 수 있는지를 바이든 행정부는 현실적으로 재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셉 윤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같은 날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민주주의 4.0’이 화상으로 기획한 ‘한미의원 대화’에 참석해 “워싱턴 정가는 한국 정부가 북한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며 “남한이 북한에 지나치게 관대한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있다”고 전했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 /연합뉴스


유럽도 이인영 비판...통일부 “제재, 종합 평가하자는 뜻”

이 장관을 겨냥한 비판은 미국을 넘어 유럽까지 번졌다. 2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나빌라 마스랄리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담당 대변인은 지난 1일 RFA에 “북한 취약계층이 직면한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의 주된 책임은 북한 당국의 정책에 있다”고 밝혔다. 마스랄리 대변인의 이날 발언은 이 장관의 FT 인터뷰에 대한 논평 형식으로 이뤄졌다. 마스랄리 대변인은 대북 제재의 부작용과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는 북한 주민들과 인도주의 단체 운영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려는 의도가 없다”며 “유럽연합은 안보리 결의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와 안보를 구축하는데 기초가 된다는 점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독일 외무부 관계자 역시 같은 날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자발적·반복적으로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며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지속적·광범위적·체계적으로 위반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국제적 비판이 이어지자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3일 취재진과 만나 “일부 보도에서 이 장관 발언의 취지와 맥락이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며 “이 장관의 발언은 제재가 비핵화 촉진이라는 목적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지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이 대변인은 “이 장관의 발언도 국제사회의 인식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라며 “강력한 대북제재가 취해진 지 5년 정도 된 시점에서 효과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장관은 대북제재 장기화와 태풍 등 자연재해, 고강도 방역 조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북한 주민의 인도적 어려움이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며 “대북제재만으로 북한의 어려움이 야기됐다는 식으로 장관 발언이 전달되는 것은 취지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다만 미국과 유럽이 지적한 김정은의 실정에 대해서는 이날도 언급하지 않았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연합뉴스


정세현 “김정은이 말했으니 한미훈련 중단해야"…3월 훈련은 축소 실시

북한과 미국이 우리 대북 전략에 미온적 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한미연합군사훈련 관련 발언도 화제가 됐다. 그는 지난 3일 민주당 의원 46명이 공동 개최한 ‘다시 평화의 봄, 한반도의 길’ 토론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분명히 얘기했다”며 이를 근거로 올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또 “내가 퍼주기 대장인 사람”이라며 이인영 장관에게도 대북 지원에 더 적극 나서라고 주문했다. 이 장관은 “국제사회와의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관련 제재의 면제가 더 신속하고 유연하게, 폭넓게 이뤄지도록 계속 노력하겠다”며 “지난해에 이어 인도 협력의 제재 면제에 대한 포괄적 승인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은 결국 축소 시행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실제 훈련보다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위주의 훈련이 시행되는 것이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한미 군 당국은 오는 8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되는 전반기 연합지휘소훈련(CCPT)을 지난해 8월 규모로 축소 시행하기로 했다. 훈련 내용도 당시와 동일하게 진행한다.

지난해 8월에 시행된 하반기 지휘소훈련은 코로나19를 이유로 참가 병력을 줄이고 야간 훈련을 생략한 바 있다. 규모와 내용 면에서 ‘반쪽 훈련’에 그쳤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번에도 국외에 있는 미군 병력이 한국에 대거 들어오지 못하게 되면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작업의 핵심인 미래연합군사령부 완전운용능력(FOC) 검증도 하반기로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첫 합동 군사훈련부터 우리 안보 태세를 너무 가볍게 점검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북한이 이번 훈련 축소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한반도 정세에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김정은은 지난 1월 노동당 대회에서 “남조선 당국은 첨단 군사 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 군사 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계속 외면하고 있다”며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다시 3년 전 봄날로 돌아갈 수 있다”고 압박한 바 있다. 3월 군사훈련 때 북한의 반응은 바이든 시대 북미·남북 관계의 첫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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