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골프의 영웅’으로 떠오른 브라이슨 디섐보(28·미국). 백신 접종에 속도가 붙고 대회장에도 사람이 몰리기 시작한 지금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우승에 성공하면서 그는 이제 열풍을 넘어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8일(한국 시간) 미국 올랜도의 베이힐 골프장(파72)에서 챔피언 퍼트를 넣은 뒤 헐크처럼 포효한 100㎏ 거구 디섐보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6·미국) 얘기를 꺼냈다. “경기 시작 전에 우즈한테 문자메시지를 받았어요. 무슨 일이 있든지 간에 아널드 파머의 말처럼 담대하게 맞서자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최근 끔찍한 교통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쳐 입원 중인 우즈는 대회 주최자였던 ‘전설’ 파머(1929~2016년)를 상기시키며 디섐보의 분전을 응원했다.
파머는 공격적인 플레이와 특유의 친화력으로 골프에 대중적 인기를 입힌 인물이다. 뒤를 이은 우즈는 팬덤 형성을 넘어 골프 산업의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끌었다. 골프의 새로운 인기를 책임질 디섐보가 다름 아닌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즈의 지원을 받으며 우승한 것은 상징성이 크다.
1타 차 공동 2위로 출발한 디섐보는 버디 2개와 보기 1개로 1타를 줄여 합계 11언더파 277타로 역전 우승했다. 장타를 펑펑 터뜨렸지만 4번 홀(파5) 11m 버디, 11번 홀(파4) 15m 파 퍼트 등 고비마다 먼 거리 퍼트가 잘도 들어갔다. 우승 상금은 167만 4,000달러(약 18억 9,000만 원). 지난해 9월 메이저 US 오픈 우승 뒤 6개월 만에 승수를 추가하면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통산 8승을 기록했다. 올 시즌 첫 다승자로서 페덱스컵 랭킹 1위로 올라선 디섐보는 세계 랭킹도 11위에서 6위로 끌어올렸다.
실험과 도전을 즐기고 대회가 없을 때는 인터넷 게임 생방송으로 팬들과 소통하는 디섐보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출생)가 원하는 골프 스타일지 모른다. 실제로 미국 젊은이들 사이의 대표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에 올라온 디섐보의 370야드 드라이버 샷 영상에는 “리플레이를 봐도 못 믿겠다” “(너무 세게 쳐서) 골프공이 불쌍하다” “샷 하기 전 루틴도 쿨하다. 타이틀 매치를 앞둔 복서 같다” 등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지난 2016년 PGA 투어 데뷔 초만 해도 아이언 클럽 길이를 똑같이 만들어서 쓰는 괴짜로 통했고 이후에는 샷이나 퍼트 때 시간을 질질 끄는 슬로 플레이로 비난받았는데 지금은 슬로 플레이도 멋있다는 팬들이 생겨난 것이다.
디섐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여러 제한과 우즈의 사고로 인한 충격 등에 움츠려 있던 골프 팬들을 전에 없던 화려한 ‘쇼’로 깨어나게 했다. 호수를 가로질러 칠 수 있는 6번(파5) 홀에서 1온 시도를 약속했던 그는 3라운드에 370야드 초장타로 팬들을 흥분하게 하더니 이날 4라운드에서도 ‘안전제일’을 거부했다. 같은 홀에서 페어웨이 끝을 노리고 친 드라이버 샷은 320야드를 날아가 구른 거리까지 376야드가 찍혔고 어렵지 않게 버디로 연결됐다. 갤러리 입장을 25%로 제한했는데도 디섐보 곁에는 구름 관중이 따라붙어 역사적인 장타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디섐보는 11일 개막하는 ‘제5의 메이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으로 무대를 옮겨 쇼를 이어간다.
11년 만의 PGA 투어 우승을 노린 48세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는 1타 차 2위(10언더파)를 했고 임성재는 4타를 잃고 1언더파 공동 21위로 마감했다.
/양준호 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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