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부 제품과 시장을 과감히 포기해야 합니다.”
세계 최대 통신 장비 업체인 중국 화웨이의 런정페이 창업자는 올 초 직원들 앞에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입김에 따른 세계적인 불매운동(보이콧)으로 장비 사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고 스마트폰 사업은 안방인 중국에서도 샤오미 등에 밀리자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다. 화웨이는 스마트팜 등 각종 신사업에 진출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서도 화웨이를 겨냥한 견제가 계속 이어지면서 본격적인 생존 시험대에 올랐다는 관측이 나온다.
7일(현지 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 세계 이동통신 장비 시장에서 화웨이의 점유율이 지난해 기준 20%(시장 조사 기관 델오로 기준)로 전년 대비 2%포인트 하락했다고 보도했다. 에릭슨과 노키아가 같은 기간 2%포인트, 1%포인트씩 오른 것과 대비된다. 이에 따라 전체 순위도 에릭슨(35%), 노키아(25%)에 이어 3위에 머물렀다. 다만 중국 매출을 포함한 전체 점유율로 보면 1위를 지켰다.
이 같은 화웨이의 부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이후 계속돼온 제재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019년 5월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전방위 압박을 가해왔다. 특히 유럽 등 동맹국에 화웨이의 5세대(5G) 사업 참여 배제를 요구했다. 델오로 애널리스트인 스테판 퐁라츠는 “25개 이상의 유럽 통신 업체들이 최근 몇 년간 화웨이 장비를 다른 업체 것으로 교체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의 추락은 더 드라마틱하다. 화웨이의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올 1월 기준 20%(카운터포인트리서치 기준)로 3위까지 떨어졌다. 오포는 화웨이의 빈자리를 채우며 사상 첫 1위에 올라섰다. 지난해 4분기만 해도 화웨이 점유율이 30%에 달했지만 대만 TSMC가 화웨이의 모바일애플리케이션(AP) 제작을 거부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이미 화웨이 기린칩을 설계하던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의 실력파 엔지니어들은 샤오미·오포·비보 등으로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진 상황이다. 지난해 말에는 중저가 스마트폰 브랜드 ‘아너'도 매각했다. 실제 화웨이는 복수의 부품 업체들에 올해 스마트폰 생산량이 전년 대비 절반 수준인 7,000만~8,000만 대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최악의 경우 5,000만 대까지 하향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화웨이는 돌파구 마련 차원에서 최근 폴더블폰을 출시했지만 제재가 장기화할 경우 이마저도 불투명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실제 올 1월 화웨이가 프리미엄 스마트폰 사업을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외신도 있었다.
화웨이는 신사업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스마트팜·스마트팩토리·스마트양돈 등이 대표적이다. 화웨이는 5G 망을 통해 농장이나 공장 등의 업무 환경을 시시각각 제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최근에는 로이터가 중국 국유 자동차 기업인 창안자동차 공장에서 화웨이가 전기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다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테크 굴기의 대표 주자로서 독자 생존을 위한 기술 개발에도 전력투구하고 있다. 화웨이는 최근 자사 스마트폰에 자체 개발 운영체제(OS)인 훙멍을 탑재했다. 미국이 화웨이를 밟을수록 기술 자립화에 대한 열망도 커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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