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을 검찰로부터 넘겨받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직접 수사와 다른 수사기관 이첩의 갈림길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쌓으면 사람 키를 넘는 수준'이라는 방대한 사건 기록을 지난 주말 내내 읽으며 '1회 독(讀)'을 했지만 이날 처리 방향에 대해 말을 아꼈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고 당장 공수처가 직접 수사에 나설 수 있는 형편이 아닌 상황이 고려된 것으로 추정된다. 공수처는 아직 수사팀 진용도 꾸리지 못한 상황이다. 빨라도 다음 달 초에나 검사·수사관 채용이 마무리될 수 있어 그때까지 사건을 수사하지 않는다면 '묵힌다'는 야권의 거센 공세에 휘말릴 수 있다.
일각에서 일선 검찰청에서 검사를 파견받아 공수처가 수사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제 식구 감싸기'를 막자는 공수처법 취지를 고려한다면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방법이다. 김 처장은 지난 1월 1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현직 검사는 파견받지 않으려 한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게다가 공수처로서는 정치적 논란이 큰 사건을 상징성이 큰 '1호 사건'으로 삼는 것도 부담이 크다. 이 사건은 어떤 결론을 내리든 여야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이 사건을 수원지검으로 재이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이규원 검사를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 수사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어 수원지검이 끝을 맺어야 한다는 차원에서다. 실제로 김 처장은 지난 4일 "지금까지 수사해온 검찰이 사건을 제일 잘 알기에 검찰이 수사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퇴라는 변수가 떠올랐다. 그동안 수사 외풍을 막아왔다는 평가를 받는 윤 전 총장의 사퇴로 수원지검 수사팀이 동력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공수처가 사건을 재이첩한 뒤 검찰에서 수사가 흐지부지된다면 '사실상 방조했다'며 공수처 책임론이 불거질 수도 있다. 이 지검장이 공개적으로 검찰 재이첩을 반대한 점도 부담이다. 그는 지난 3일 공수처법 25조 2항을 거론하며 "공수처의 재량에 의해 이첩받은 사건을 검찰로 재이첩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입법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김 처장이 직접 언급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로의 이첩도 법체계상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수본은 5급 이하 공무원의 범죄를 수사하는데, 이 지검장(차관)과 이 검사(3급 이상)는 관할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사건이 '1호 사건'으로 남아 향후 공수처 사건 처리의 전례가 된다는 점이 가장 큰 부담이다. 김 처장은 "어느 수사기관이 수사해야 공정한지를 중요하게 고려하겠다"며 "이번주 중에 결정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박예나 인턴기자 ye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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