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중국 총리가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업무 보고에서 “10년간 단 하나의 칼을 가는 심정으로 매진할 것”이라며 8대 정보기술(IT) 신산업 육성 의지를 밝혔다. 리 총리는 “전략적 과학기술 능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한 뒤 여러 번 ‘돌파구’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미국과 기술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결기를 드러냈다.
중국의 ‘기술 굴기’는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에 대항해 자립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전략을 들여다보면 결국 한국의 주력·신산업이 타깃이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의 8대 산업에는 희토류를 포함한 신소재, 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스마트카, 신약 등이 포함됐는데 대부분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앞서거나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는 분야이다. 과학기술 육성을 위해 ‘7대 영역’으로 꼽은 인공지능(AI), 유전자·바이오, 헬스케어 등도 우리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핵심 분야와 겹친다. 미중 기술 전쟁이 격화될 경우 우리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중국은 대놓고 기술 전쟁을 선언하는데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강 건너 불 구경도 모자라 온갖 규제로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기업이 현금을 축적해 기술 개발에 투자하기도 전에 이익공유제라는 이름으로 빼앗아갈 궁리만 하고 있다. 신산업 육성을 위해 만든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은 대기업 특혜론에 반의 반쪽이 됐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서 대기업의 63.6%가 올 상반기 대졸 신규 직원을 뽑지 않거나 채용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답한 것은 규제 사슬과 퇴행적 노동 환경의 결과다.
정부는 선거용 정책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 전반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AI 분야에서 반중(反中) 연합 전선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동맹 움직임에도 적극 화답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과 신산업은 우리 경제의 생사가 걸린 분야다. 강국들은 첨단 시장을 선점하려 전쟁을 불사하는데 개혁을 명분으로 내부 총질만 하는 우리의 상황이 안타깝다.
/논설위원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