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치러지는 대선의 전초전인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27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정치권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주류 세력 교체’를 내걸고 집권 이후 4년 가까이 우리 사회의 체제 전반 개조를 시도해온 현 정권의 재집권 여부가 앞으로 1년 사이에 결정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통합을 외치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다짐했으나 실제로는 정반대 결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권은 독주와 오기 정치로 법치주의를 흔들고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경제적으로 ‘소득 주도 성장’을 내걸고 현금을 살포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했으나 실제로는 일자리 쇼크, 부동산 대란, 소득 양극화 등으로 서민들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또 중국과 북한의 눈치를 보는 외교 안보 정책을 폈고 그 과정에서 한미 동맹 균열과 최악의 한일 관계를 초래했다.
과거 ‘재야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불렸던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을 만나 문재인 정권 4년의 실체 진단과 향후 정국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폭정종식 민주쟁취 비상시국연대’ 공동대표로 활동 중인 장 원장은 10일 “문재인 정부는 시대착오적인 사회주의 마인드로 정책을 펴다 보니 경제를 파탄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보선과 내년 대선에 대해 “국정을 총체적으로 파탄낸 문재인 정권, 더불어민주당 정권을 심판하는 선거”라고 규정한 뒤 “대안 세력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고 해서 집권 세력의 잘못을 용인하면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불렸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폭정종식 민주쟁취 비상시국연대’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비상시국연대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파탄을 규탄하고 끝장내서 새 정부가 들어설 수 있도록 준비하는 조직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성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경제가 한마디로 파탄이 났다. 우선 경제성장률이 떨어졌고, 삼성전자의 휴대폰·반도체 등 일부 대기업 제품을 제외하면 수출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반면에 국가 부채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부채만 해도 1,000조 원에 가까워졌다. 가계·기업 부채만 합쳐도 4,000조 원에 이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오히려 현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을 호도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왜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보는가.
△현 정부가 자본가들은 사회악이고 노동자·농민은 보호해야 한다는 이분법 논리, 즉 시대착오적인 사이비 진보 이념과 사회주의적인 마인드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8~2019년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최저임금을 무려 29%나 급격히 올렸다. 그러나 최저임금 전후로 받던 330만 명가량의 노동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 최저임금도 못 받는 실업자로 전락했다. 하위 20% 가계의 소득이 크게 줄었고 상위 20%의 소득은 더 늘어 양극화가 더 악화했다. 결국 서민을 위한다면서 서민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이다.
-여당 의원들이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위한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데.
△문 대통령을 포함해 권력 실세들이 저지른 부패와 불법을 은폐하려는 것이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니 이를 막으려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이어 중대범죄수사청도 만들려는 것이다. 이 정권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비리 의혹 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전직 대통령 등 과거 정권 인사들을 대거 잡아넣었지만 검찰 개혁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한마디도 안 했다. 그러다가 검찰이 현재 권력의 비리에 대해 수사하려 하니 검찰 개혁을 부르짖은 것은 염치가 없는 행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여권의 이런 처사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은 너무나 정당하고 불가피했다.
-현 정부가 외치는 민주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을 따르지만 소수 의견도 존중하는 것이다. 다수결 원칙을 내세워 압도적 과반 의석으로 밀어붙이면서 폭주하는 것은 전형적인 전체주의 독재다. 과거 독일의 히틀러와 구소련의 스탈린도 그랬다. 북한과 중국도 선거를 통해 그렇게 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여권의 퍼주기 행태가 속출하고 있다.
△서민을 위한 복지는 꼭 필요하지만 이를 좌파 세력 지원이나 선거 득표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때는 국민 복지라는 명분으로 사회적기업·협동조합·시민단체 등에 엄청난 돈을 풀었다고 한다. 서울·부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3월 말에 재난지원금을 주려는 것은 국가 재정으로 매표 행위를 하는 셈이다. 국민이 엄정하게 심판해야 한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최근 “외국 빚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국가 부채는 민간 자산”이라고 말했는데.
△이 지사의 포퓰리즘은 끝이 없다. 그의 말대로라면 한국은행에서 5,000조 원을 발행해 나눠준다면 민간 자산이 얼마나 늘어나겠는가. 큰일 날 발상이다. 나랏빚이 늘어나면 미래 세대에 무거운 짐을 떠넘기고 물가 상승을 초래하면서 양극화를 심화시켜 경제를 엉망으로 만든다. 이런 고려도 없는 사람이 대선 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선두권을 달리는 것은 국민적 수치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 주장도 기본 생활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잡비를 주는 정도다. 진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생각을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여러 사람에게 나눠줘 표를 얻을까 하는 생각만 한다.
-감사위원 선임시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등 세계 어디에도 없는 기업 규제들이 도입되고 있는데.
△기업의 운명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크고 더 큰 책임 의식을 갖는 사람들은 대주주다. 투명 경영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대주주를 흔들려는 투기 자본의 잘못된 행태도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주주 의결권의 과도한 제한은 자본가 계급을 억눌러야 한다는 사회주의적 발상에 따른 것이다. 국민이 잘 살려면 경제가 잘 돼야 하고, 경제가 잘 되려면 기업이 잘 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기업 경영주들이 경영할 맛을 잃어버렸다. 폐업하려고 해도 노동자들의 반대로 어렵기 때문에 가급적 해외로 나가려 한다. 이렇게 흘러가면 경제가 망한다.
-‘노조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문재인 정부 들어 더 기울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 정부는 노동 존중을 강조하지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만 존중한다. 민주노총의 압박에 굴복하는 바람에 비정규직 문제 등은 개선되지 않고 청년 실업은 더 악화하고 있다. 기업들이 민주노총의 핵심인 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 없으니 신규 채용을 못하게 된다. 또 비용 부담에 제품 가격을 올리면서 결국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대기업 노동자에게 임금을 많이 줘야 하니 하청 중소기업의 납품 단가를 후려치게 되고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은 더 떨어진다. 노동 존중이 아니라 되레 노동자를 배반하는 것이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여당이 압도적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서 야당이 견제 기능을 상실했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지 못하면 사법부와 헌법재판소·중앙선거관리위원회라도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모두 여권에 장악됐다. 대법원장은 거짓말한 게 국회에 보낸 문서에서도 드러났는데 물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을 이기는 정권은 없다. 오히려 망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시장 보선의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야권 단일화가 늦어질 경우 국민들이 굉장히 실망할 수 있다. 조기에 단일화해 야권이 이길 것이라는 희망과 확신을 줘야 한다. 그런데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런 인식을 갖지 못해 굉장히 걱정된다.
-대선을 1년 앞두고 있다. 최근 윤 전 총장이 사퇴한 직후 그의 지지율이 급등하는 등 대선 구도에 지각변동이 나타나고 있는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당선과 같은 새 바람이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이다. 윤 전 총장은 과거 대권에 도전했다가 물러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고건 전 총리와도 다를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불법·부패를 척결하다가 나왔고 정치할 의지도 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밖에서 제3세력을 형성한 뒤 국민의힘과 연합하는 게 한국 정치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윤 전 총장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도 높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정치적 노선과 입장을 바꾼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상당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런 일이 없다. 나는 운동권 출신 사람이지만 마르크스·레닌주의·주체사상·북한에 대해 처음부터 반대해온 사람이다.
-지금 운영하는 신문명정책연구원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새로 도래하는 문명에 맞춰 사상·이념·정책을 만들어가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나 주체사상이 없어져야 하는 것은 물론 자본주의도 변해야 한다. 이제는 더 많은 생산과 소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아 실현,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경제활동을 하게 해야 한다. 김지하 시인은 이를 두고 ‘시장(市場)의 성화(聖化)’라고 표현했다. 지금까지는 대립과 투쟁의 이원적 세계관에 기초해서 세상을 봤다. 이제는 물질과 정신의 통일, 자연과 인간의 상생,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동이란 일원적 세계관을 가져야 할 때다.
He is…
1960년대에 학생운동을 시작해 노동운동·민주화운동의 일선에서 싸워온 재야 운동가다. 1945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김해에서 성장했으며 마산공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법대 학생회장 시절 노동운동가 전태일이 분신하자 가족에게 제안해 서울대 학생장으로 치렀다. 민청학련·청계피복노조·김대중내란음모 사건, 5·3 인천사태 등 주요 노동운동, 민주화 투쟁 때마다 관여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12년간 수배되고 9년간 수감됐으며 호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에서 이재오 전 의원,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고(故)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활동하며 ‘재야 4인방’으로 꼽혔다. 10억 원가량의 민주화보상금이 나왔지만 거부했다. ‘새벽노래’ ‘문명의 전환’ ‘한국경제 이래야 산다’ 등 30권 이상의 저서를 냈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