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전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집 건너편에 있는 트레이더조를 찾았다. 오전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사람이 없겠거니 했는데 대뜸 입구에 서 있는 직원이 “8시부터 9시까지는 노인들을 위한 쇼핑 시간이니 미안하지만 조금 이따가 와달라”고 했다.
아차, 그랬다. 지난해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일 때 트레이더조를 비롯한 많은 미국 마트가 ‘노인 쇼핑 시간대’를 만들었다. 긴 줄을 서서 대기하기 힘들고 코로나19에 취약한 이들을 위한 배려였다. 처음에는 일주일 내내 있었는데 이제는 이틀만 한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1년이 지난 지금도 이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지난 4월쯤이었던 것 같다. 사재기가 극심해 마트에 물건이 많지 않던 때다. 미 공영라디오 NPR을 듣는데 청취자와 전화 연결을 하는 코너가 있었다.
자신을 몸이 불편하다고 소개한 한 사람이 “집 근처 마트에서 식료품을 배달해 먹는데 모든 사람이 코로나19에 배달을 이용해 주문 폭주로 내 물건이 오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진행자는 “젊은 분들은 마트에 직접 갑시다”라고 했다. 코로나19 와중에도 장애인을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놀랍고 부러웠다.
코로나19는 사회의 많은 치부를 드러냈다. 록다운(폐쇄)에 소득 불평등은 한층 심해졌고 완화적 통화정책은 극심한 자산 불평등을 낳았다. 투기에 가까운 주식 투자나 비트코인 대박 없이는 내 집 마련조차 어렵다.
약자의 고통은 더하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로 여성과 히스패닉·흑인 등이 더 많은 일자리를 잃었다. 코로나19 경기 침체를 ‘시세션(she+recession)’이라고 할 정도다. 미국도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불평등과 중산층 재건이 최대 이슈가 됐고 정부가 돈을 더 풀자는 좌파와 시장과 혁신에 기대는 우파가 팽팽히 맞선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같다.
이 때문인지 소수자에 대한 증오와 폭력이 더 늘었다. 미국은 지난해에만 아시안을 향한 증오 범죄가 150%나 치솟았다. 뉴욕의 경우 올 들어 대낮에도 아시안에 대한 묻지 마 폭행과 강도 사건이 벌어진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 동포에 대한 혐오와 멸시, 일부 종교를 향한 적의가 도를 넘어섰다. 같은 민족, 같은 언어를 쓰는데도 차별이 이뤄진다. 어찌 보면 더 심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한국이 미국의 배려심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마트의 노인 쇼핑 시간대 배정과 장애인에 대한 고민·걱정 같은 작은 것부터가 대상이다. 인종차별 국가에서 얻을 게 뭐가 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미국은 대통령이 아시안 혐오 범죄에 대해 “이것은 미국답지 않다. 아시안에 대한 악랄한 범죄를 멈추라”고 한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같은 주요 정치인도 같은 목소리를 낸다. 미국과 한국은 역사적·사회적 배경이 다르지만 청와대와 정치권이 중국 동포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려면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미국에 있으면서 느낀 것은, 많고 많은 문제에도 미국은 사람이 먼저인 나라라는 점이다. 미국은 사람이 신호등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보행자가 먼저이고 아이와 여성을 배려한다. 코로나19의 비극 속에서도 적지 않은 미국민들이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애썼다. 코로나19 전염 우려에 돌봄을 받지 못하는 동물원의 동물들을 걱정하고 재택근무로 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화분에 대한 기사를 신문 1면에 쓰는 나라가 미국이다.
한국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세계경제 규모 10위 국가로 올라섰다. 이제 한국도 사회 주변에 눈을 돌릴 때가 됐다. 코로나19의 또 다른 교훈이다.
/뉴욕=김영필 특파원 susopa@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