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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권력과 싸운 모겐소 통해…윤석열 '법치주의 수호' 설파

■사퇴 전 메세지 남긴 윤석열

秋尹 갈등·중수청 논란 최고조때

'檢 수사권 강화' 강조한 책 펴내

윤 "우직하게 수사" 발간사 직접 써

2,300부 전국 일선 검사에 배포

대검 "교육 목적" 정치 해석 경계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하고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퇴임 직전 ‘미국의 영원한 검사 로버트 모겐소’를 일선 검사들에게 배포하라고 지시한 배경에는 ‘검찰이 선(線)을 넘은 정치에 더 이상 흔들리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서적이 처음 발간된 때나 실제 배포가 이뤄진 시기가 이른바 ‘추윤(秋尹)’ 갈등이 고조되거나 정부 여당이 ‘검찰 개혁 시즌2’를 강조하고 나선 때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윤 전 총장이 직접 쓴 발간사에서 ‘화이트칼라 범죄 수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故) 로버트 모겐소 전 뉴욕 맨해튼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삶과 말을 통해 ‘검사 정체성 확립’이라는 화두를 던진 이유다. ‘거대 권력’과 싸워가며 법치주의를 지켜낸 모겐소의 삶에서 후배 검사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분석이다.



21일 서울경제가 단독 입수한 서적 ‘미국의 영원한 검사 로버트 모겐소’가 처음 발간된 시기는 지난해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채널A 사건’과 관련한 윤 전 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한 때였다. 결국 법무부와 대검의 갈등이 악화하고 저작권·예산 문제까지 맞물리면서 출간은 미뤄졌다. 이후 대검에서 다시 이 책이 거론된 건 윤 전 총장의 ‘입’이었다. 그가 사퇴 발표 일주일 전 대검 참모들에게 ‘원래 계획대로 배포하라’고 지시했고 결국 지난 12일부터 2,300부가 전국 검찰청을 통해 일선 검사들에게 배포되고 있다. 중대범죄수사청 설립, 수사·기소 분리 등 검찰 개혁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현직 검사들에게 실제 사실을 알리고 ‘잘못된 팩트는 바로잡는다’는 취지에서 책을 발간·배포하고 있다는 게 대검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 책에는 모겐소 전 검사장의 삶을 통해 미국 검사들이 직접 중대 범죄를 수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담겨 있다. 또 미국 검찰의 역사가 검사의 수사 역량 강화를 꾀하고 있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모겐소 전 검사장이 재직 시절 설립한 금융 범죄 전담부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또 검사 한 명이 수사에서 재판까지 사건을 전담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재편하기도 했다. 뉴욕 맨해튼지방검찰청은 현재 재판·항소·수사와 관련된 여러 국과 부서로 나뉜다. 수사부는 특별·인지수사를 담당하는 곳으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와 유사하다. 수사부는 모겐소 전 검사장이 재직 시절 직접 설립한 곳으로 금융·공직부패·조직범죄 등의 직접 수사를 도맡는다. 재판부는 국내 검찰 조직으로 치면 형사·공판부를 합친 부서다. 뉴욕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받으면 수사를 지휘하고 공소제기·유지를 맡는다. 이는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검찰 수사권 박탈, 수사·기소 분리 등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모겐소 전 검사장 삶 속에 나타난 미국 검찰의 모습이 ‘미국 검사는 직접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현 정부 여당 주장에 반대 논리로 작용하는 셈이다. 다만 대검은 해당 서적의 발간·배포에 대한 정치적 해석은 경계했다. 교육용 목적이라 배포 시기도 윤 전 총장 사퇴 이후로 잡았다는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 제도가 급변하는 과도기 속에 윤 전 총장은 자신을 비롯한 모든 검사들이 공부를 해야 할 지점이라 봤다”며 “배포 시기도 윤 전 총장 사퇴 이후로 잡아 정치적 오해가 없도록 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이 말한 사퇴의 주요 사유가 정부 여당의 중수청 설립 추진인 데다 그가 향후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만큼 정치적 해석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중수청 설립에 대한 반박 사유가 될 수 있는 서적을 출간해 전국 검찰청에 배포한 자체가 현 정부 여당을 겨냥한 것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1919년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난 모겐소 전 검사장은 1961년 뉴욕 남부 연방검사장으로 취임한 데 이어 1975년부터 2009년까지 자신의 고향인 뉴욕 맨해튼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지냈다. 2009년 로이드은행과 크레디트스위스은행의 이란 경제 제재 위반 사건은 그가 검사장 시절 처리한 대표적 비리 사건이다. 당시 뉴욕 맨해튼지방검찰청은 이들 은행이 숨기려고 한 자금 거래 흔적들을 찾아내 재판에 넘겼다. 모겐소 전 검사장은 2019년 7월 21일 생을 마감했다. 윤 전 총장은 발간사에서 “모겐소 전 검사장은 국가 경제를 병들게 하는 거대 경제사범에 맞서 검찰의 수사 역량을 집중해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며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검사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손구민 기자 kmso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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