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18일 처음 열린 미국과 중국의 고위급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내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양측은 공개된 모두 발언에서 1시간 넘게 상대방의 약점을 원색적으로 공격하며 거친 설전을 벌였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화약 냄새가 가득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중국이 인권·경제·안보 측면에서 국제 질서를 위협한다’는 취지로 경고했다.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은 ‘미국은 내정간섭을 하지 말고 흑인 인권부터 챙기라’고 맞받아쳤다.
중국은 여기에 군인과 공기업 직원에 미국 테슬라 전기차의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맞불을 놓은 셈이다. 전장의 한편에서 양국은 자국 산업 키우기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 등 4대 핵심 부품·자원의 공급망을 새로 짜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제조업 부활을 선언했다. 반면 리커창 중국 총리는 “10년간 칼을 가는 심정으로 매진할 것”이라며 8대 산업 육성책을 내놓았다.
미중 간 패권 전쟁이 격화되는 상황은 우리에게 분명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서 외교 전략을 잘못 세우면 나라 전체가 구한말 때처럼 벼랑에 내몰릴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사드 보복’을 당하며 중국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의 비정함을 맛보았다. 그런데도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주 “미국은 우리의 유일한 동맹국이고 중국은 최대 교역 상대국”이라며 미중 사이에서 눈치 보기를 계속하고 있다.
신냉전 시대에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같은 줄타기 외교는 통하지 않는다. 정부는 민주주의·인권 등을 중시하는 미국과의 가치 동맹을 공고히 하는 한편 경쟁국의 신산업 육성에 맞서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한 종합 지원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소용돌이치는 국제 정세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전략적 모호성에 따라 ‘회색 전략’을 펴면 더 큰 풍랑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논설위원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