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크리스티안 바스케스(37·사진)가 ‘세상을 바꾸는 음악의 힘’을 통영의 무대 위에 펼쳐낸다. 바스케스는 베네수엘라 저소득층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음악 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 출신으로, 엘 시스테마 창립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에게 지휘를 배운 뒤 유럽, 도쿄, 싱가포르, 미국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지금은 노르웨이 명문 스타방에르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활약하고 있다. 클래식을 통한 사회, 개인의 변화라는 엘 시스테마의 설립 목표를 몸소 체험한 이 젊은 거장이 오는 26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공연에서 국내 관객들에게 치유와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음악제를 앞두고 한국에 입국해 자가 격리 중인 그를 서면 인터뷰로 만났다.
바스케스가 꼽는 이번 개막 무대의 키워드는 ‘음악의 마법’이다. “관객이 희망과 기쁨을 느끼는 ‘마법의 순간’을 함께 만들어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이번 음악제를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지난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여파로 행사가 취소되는 아픔을 겪은 터다. 무대가 사라지는 고난을 겪은 음악인으로서 이번 무대를 위한 내한과 자가격리는 “전혀 고민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그는 “지금 인간의 건강과 평온, 위기의 시기에 대한 반성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음악”이라며 “그 통로가 될 이번 공연을 생각하니 정말 흥분된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바스케스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함께 윤이상의 ‘서주와 추상’(1979)으로 음악제의 시작을 알린다. 핵전쟁에 의한 인류 멸망을 경고하고 평화·화합의 메시지를 강조한 이 곡은 섬뜩한 금관 팡파르로 시작해 현악기로 연주되는 동아시아적인 소리가 더해져 대조를 이루고, 이윽고 융화·치유의 과정을 선명한 음색으로 담아낸다. 윤이상 작품을 지휘하기는 이번에 처음이라는 바스케스는 “그의 음악은 여러 감정과 색, 효과로 가득 차 있다”며 “음표 하나하나에 그의 목소리가 반영돼있는 것 같다”는 감상을 전했다. 이어 선보이는 곡은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이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은 작곡가가 스탈린 정권에서 공산주의 체제를 찬양하는 음악을 요구받아 발표한 곡으로, ‘겁박에 굴복한 작품’이라는 비난과 ‘은밀한 저항이 숨어있는 작품’이란 평가가 공존한다. 바스케스는 “인간의 영혼을 격렬하게 뒤흔드는 치열한 투쟁 끝에 갈등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곡”이라고 이 작품을 소개했다.
평화와 희망, 사랑을 전하고, 개인과 사회를 바꿔 놓는 음악의 힘을 몸소 경험하고, 여전히 믿고 있다는 바스케스는 이렇게 말한다. “음악은 행복을 위한 필수요, 인간의 기본 욕구입니다. 그래서 멈출 수 없고, 계속 연주되어야 합니다.” 통영국제음악제는 4월 4일까지 통영국제음악당을 비롯한 통영 일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사진=통영국제음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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