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미국과 중국의 국제적 갈등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도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중국의 강력한 군사적 압박 속에서 미국의 우산 아래로 들어간 대만이 오히려 ‘신 냉전시대’의 모범답안이라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또 미중 간 외교 갈등의 핵심이 될 기술 패권 싸움에서도 우리가 한미일 동맹의 ‘키맨’으로 활약해 주도권을 보여야 한다는 평가도 잇따르고 있다.
22일 서경 펠로(자문단) 및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현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해 ‘외교 전략 부재’라고 진단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우리 정부는 듣기 좋게 ‘전략적 모호성’으로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외교 전략 자체가 실패해서 지금은 외교 전략 자체가 없는 상황으로 봐야 한다”며 “한국과 미국이 똑같은 이해관계를 가질 수 없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 차이가 한미 동맹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외교 전략을 발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대만의 외교 행보가 우리가 참고해야 하는 대표적인 외교 전략으로 제시했다. 신인균 경기대 북한학과 겸임교수는 “미국은 선택을 강요하고 있고 우리는 결국 미중 간에 양자택일을 해야 할 상황을 맞을 것”이라며 “대만은 대중국 교역량이 우리보다 높은 나라이지만 미국의 외교 동맹에 들어가 오히려 효과를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만은 미국의 대중 제제 등으로 반도체 수출이 급증한 상황이다. 대만의 대표적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인 TSMC는 역대 최고의 호황을 만끽하고 있다. TSMC는 지난해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 54%를 기록, 1조 3,393억 대만달러(약 52조 5,000억 원)의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반도체 시장의 호황이 이어진 가운데 미국과 일본 등의 정치·경제적 지원을 받은 효과가 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신 교수는 “대만 사례를 본다면 결코 중국 압박에 굴하지 않고 한미일 동맹의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며 “계속 시간을 질질 끌게 되면 조 바이든 행정부의 동북아 외교 전략에서 주변부로 밀려나게 될 위험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의 4자 협의체)’가 신냉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자유 진영 동맹에 적극적으로 가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잇따르고 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중국이 경제력을 앞세우면서 주변국들이 참여하고 일부 독재국가들이 협의할 수 있다”면서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가 선의가 아님을 국제사회가 인지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러시아와 이란 등은 중국과 협의할 수 있지만 자유민주주의나 대외 교역이 많은 나라들은 중국과 협의하지 않으면서 신냉전 구도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쿼드는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비교해서는 상대적으로 군사 안보 협력 관계가 낮을 수는 있지만 동북아 지역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경제안보협의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쿼드가 됐건, 쿼드의 확장체(쿼드 플러스)가 됐건 우리가 선제적으로 참여해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이미 조직이 확정된 상태에서 들어가면 활동 반경이 아주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도 “한국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되레 한국의 위상만 축소되고 있다”며 “따라서 쿼드에 가입하면서도 중국을 직접 겨냥하는 행동은 자제하면서 중국의 양해를 얻어내는 지혜로운 접근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쿼드 멤버인 인도 역시 군사 훈련에 대해 신중한 만큼 우리도 군사 행동에 대해서는 인도와 보조를 맞추면서 일반적인 가치 지향적인 행동은 미국 쪽에 동참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고 덧붙였다.
신냉전체제가 결국 미중 간 기술 패권 싸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첨단 기술을 보유한 우리가 한미일 동맹의 ‘키맨’으로 활약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중국이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 등 미래 기술 패권을 확장하려 하는데 미국이 일본 등과 손을 잡아 이를 강력하게 저지하는 경제 패권 싸움이 앞으로 더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냉전 시대에서는 공산·민주 진영이 힘과 힘으로 맞붙었다고 한다면 지금의 미중 갈등은 경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제 전쟁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며 “경제 기술 패권이 싸움의 키워드인데 5G,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신기술들을 둘러싸고 치열한 기술 표준 다툼을 벌일 것으로 예상돼 첨단 기술을 보유한 우리가 ‘키맨’으로 활약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동효 기자 kdhyo@sedaily.com, 김남균 기자 south@sedaily.com, 주재현 기자 joo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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